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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일방통행 J노믹스

호통치는 정부에 입닫은 재계
일자리 만들 주체는 기업인데 '기업 패싱' 勞편향 정책 성공할까

[이재훈 칼럼] 일방통행 J노믹스

"폭풍 불 때는 납작 엎드리는 게 상책이다. 적폐 세력, 개혁의 대상이자 양극화 주범으로 찍힌 기업이 할 말이 있겠나. 당분간은 입 닫고 지낼 수밖에 없다."

4대 그룹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출범 한달 사이 기업은 완전히 왕따 신세가 되어버렸다고 하소연했다. 소통과 통합을 앞세운 새 정부가 각계를 끌어안으면서도 유독 기업에 대해서는 날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정책을 중심으로 한 J노믹스(문재인 경제정책)가 속속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만 여기에 기업의 의견이 반영된 흔적은 없다.

며칠 전 공개된 '일자리 100일 계획'만 해도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1만원, 근로시간 단축 등 민감한 사안이 많았다. 노동계의 주장을 거의 수용한 것이다. 특히 기업들은 비정규직 과다고용 기업에 부담금을 물린다는 내용에 경악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를 두고 '대기업 패싱(passing)'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중소기업의 의견도 묵살된 점을 감안하면 '기업 패싱'이라 칭해야 옳다.

문재인정부의 기업관은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의 발언 파문을 계기로 명확해졌다. 김 부회장은 지난달 25일 "대기업 정규직 과보호에 대한 해결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넘쳐나면 산업현장의 갈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가 혼쭐이 났다. 문 대통령이 "경총은 비정규직으로 인한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로서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했고,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재계가 압박으로 느낄 땐 느껴야 한다"고 호통쳤다. 노동문제에 관한 한 근로자는 선(善)이고 약자며, 사용자는 악(惡)이요 잠재적 범법자란 이분법적 발상에 젖어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파문 이후 박병원 경총 회장은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에게 "앞으로 정부 정책에 잘 협조하겠다"는 '반성문'까지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정기획위에는 한국노총 관계자들이 특보 형식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경제단체는 제외됐다. 정부와 재계를 잇는 소통창구는 없어졌으며 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아직까지 재계와 대화한 적도 없다.

일자리 정책에 대한 노동계의 입김은 거세졌다. 청와대 일자리수석으로 내정됐던 안현호 전 지식경제부 차관의 인사가 철회된 것은 노동계가 격하게 반대한 탓이라는 소문이 있다. 문재인정부가 노동계 편향적 일자리정책을 펴는 것은 노동계에 대한 동지의식, 나아가 '촛불'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일 것이다. 광화문의 촛불시위를 주도한 양대 노총과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은 "촛불이 만든 정권이니 촛불의 뜻을 받들라"며 새 정부에 온갖 무리한 요구사항을 담은 '촛불 청구서'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를 만드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민간 기업들이다. 공공일자리는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민간의 일자리는 노사 합의를 통해 노동유연성을 높이는 노동개혁을 단행하고 규제 완화, 신성장동력 발굴을 통해 투자를 유도해야만 생겨날 수 있다. 기업의 의견을 무시한 일자리정책은 그래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는 하나같이 출범 초기에 기업들과 교감하며 투자.고용을 독려했다. "재벌을 개혁한 최초의 대통령이 되겠다"며 재벌과 대립각을 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경제침체가 계속되자 고집을 꺾었다.
취임 3개월 만에 재벌 총수들과 '삼계탕 회동'을 갖고 규제를 적극적으로 풀 테니 투자와 고용, 동반성장에 힘써달라고 당부했다. 일방통행식 J노믹스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부는 기업과 소통해야 한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