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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김상조 공정위원장, 믿고 맡길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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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사서 신중·합리성 보여.. 정치권 무리한 요구 없어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14일 취임했다. 그의 말마따나 '우여곡절'이 있었다. 야당 반대를 무릅쓰고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때문이다. 법적 하자는 없다. 그러나 국회에서 정식 OK를 받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잖아도 새 정부 초대 내각에 시민단체 출신이 많은 것을 두고 'NGO정부'라는 비아냥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그중에서도 간판급이다. 그만큼 어깨가 무겁다.

다행스러운 것은 김 위원장이 보여준 합리성이다. 취임사에서 그는 공정위가 맞닥뜨린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김 위원장은 "경쟁법의 목적은 경쟁을 보호하는 것이지 경쟁자를 보호하는 게 아니다"라는 법언을 인용했다. 공정위의 궁극적 목적은 경쟁을 통한 소비자 후생 증진이지 경제사회적 약자 보호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김 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경제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주기를 공정위에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공정위는 '을'의 눈물을 닦아줄 책무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실적으로 소비자 후생과 약자 보호 사이엔 큰 괴리가 있다. 김 위원장은 둘 사이에서 '최적의 지점'을 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합리적 접근법이 아닐 수 없다.

대형마트 휴무를 예로 들어보자. 개정 유통법에 따라 이마트 같은 대형마트들은 5년 전부터 다달이 일요일 이틀을 쉰다. 골목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효과는 의심스럽다. 대형마트가 논다고 전통시장으로 발길을 돌리는 손님이 얼마나 될까. 되레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만 늘었다. 그래서 일부 지자체는 당사자 간 협의를 거쳐 일요 휴무를 평일 휴무로 바꿨다. 이야말로 김 위원장이 말한 '최적의 지점'이 아닐까.

역설적이지만 김 위원장은 정치판, 특히 여권에서 쏟아질 압력을 물리칠 배짱이 있어야 한다. 당장 국회엔 의무휴업일수를 늘리거나 신규 출점을 깐깐하게 규제하는 유통법 개정안이 여럿 제출돼 있다. 문 대통령도 복합쇼핑몰 입지를 제한하고, 영업도 대형마트 수준으로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런 정치권 요구를 다 받아들이면 소비자 후생이라는 공정위의 궁극적 목적은 설 자리가 없다.

재벌정책도 마찬가지다. 새 정부에서 재벌개혁은 최우선 과제다. 다행히 여기서도 김 위원장은 신중하다. 그는 취임식 후 기자들에게 "4대 그룹을 찍어서 몰아치듯이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수석들에게 재벌개혁은 검찰개혁처럼 빠른 속도로 할 수 없다고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고도 했다. 재벌개혁은 선무당이 애먼 사람 잡듯 번쩍 해치울 일이 아니다. 지금으로선 청와대건 국회건 김 위원장을 믿고 맡기는 게 상책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