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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국가가 값을 매기면 시장은 왜 있나

통신료 또 감놔라 배놔라.. 이통 3사 "소송전도 불사"

문재인정부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22일 통신비 절감 대책을 발표했다. 취약계층에 대한 감면 혜택을 확대하고 선택약정할인율을 현행 20%에서 25%로 올리는 게 핵심이다. 국정기획위는 이를 통해 최대 연 4조6000억원의 통신비가 줄 것으로 기대했다.

이동통신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선택약정할인율을 올리면 매출이 쪼그라든다. 이통3사의 올 1.4분기 가입자당 매출액(ARPU)은 요금할인제 가입자가 늘면서 1년 전보다 1.8% 줄었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애플 등 글로벌 제조업체 배만 불리고 중저가 단말기와 요금제를 사용하는 서민층을 역차별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삼성.LG전자와 달리 애플은 단말기 지원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는다. 애플 아이폰 구매자 90% 이상이 요금할인을 받아왔는데, 이 부담을 이통사들이 고스란히 떠안았다는 얘기다.

법적 소송도 불사할 태세다. 기업들이 정부 정책에 반발해 소송전까지 벌이겠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이통3사는 단통법 위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준비 중이다. 하위법인 고시가 상위법인 단통법을 위반했다는 논리다. 단통법 6조는 지원금에 상응하는 요금할인 혜택을 제공하라는 취지인데 현재 20% 요금할인도 고객 혜택이 훨씬 크다는 얘기다.

위헌 소지도 있다. 정부가 민간사업자의 요금 수준을 직접 결정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업의 기본권 침해라는 주장이다. 헌법 제119조 1항은 기업의 경영자율권을 보장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판결 때 이 조항을 인용했다.

국정기획위는 그동안 문 대통령의 여러 공약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설익은 대책으로 우왕좌왕했다. 가계통신비 인하가 대표적이다. 처음에는 통신 기본료를 폐지한다고 했다가 업계 자율로 장기 검토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기본료 폐지가 법적 근거가 약해 강제할 수 없게 되자 고시 개정만으로 가능한 선택약정할인율에 손을 댄 것이다.

우리나라 스마트폰 사용률과 데이터 이용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요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2015년)보다 15~40% 정도 싸다. 제품값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시장에서 정해지는 게 원칙이다. 정부는 그 과정에서 불법요소가 없도록 제도를 바꾸면서 심판을 보면 된다. 시장가격에 정부가 쓸데없는 간섭을 하면 40%에 달하는 이통3사의 외국인 주주도 가만있지 않을 터다.
한국전력 소액주주들이 싼 전기요금으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벌인 것처럼 배임 논란에 휩싸일 수도 있다. 국정기획위는 이번 대책에서 통신시장의 경쟁 활성화를 위해 진입 규제를 풀겠다고 했다. 제품 가격을 내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장에서 경쟁을 활성화하는 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