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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부동산 투기 때려잡는다고 잡힐까

참여정부 때 "하늘 두쪽…".. 같은 실수 반복할까 걱정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부동산 투기에 경고장을 날렸다. 지난 23일 열린 취임식에서다. 김 장관은 "최근 집값 급등은 투기수요 때문이며, 6.19 대책은 이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투기가 안 잡히면 더 센 대책을 내놓겠단 뜻이다. 취임사는 투기세력에 대한 경고문구로 가득 찼다. 이례적으로 대형 스크린까지 띄웠다. 정치인 출신 장관다운 모습이다.

6.19 대책이 나오자 시장에선 투기 '채찍'만 있을 뿐 공급 '당근'이 빠졌다는 비판이 나왔다. 김 장관 취임사는 이에 대한 반박 성격이 짙다. 서울 강남 통계를 보라, 다주택자 거래가 크게 늘지 않았느냐, 그러니 최근 집값이 뛴 건 실수요자가 아닌 투기세력 때문이라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곡을 찌르는 진단은 아니다. 강남 다주택자 통계는 증가율을 과대포장한 혐의가 짙다. 분모가 작으면 증가율이 껑충 뛴다. 통계에서 흔히 저지르는 실수다.

우리는 김 장관의 의욕과잉을 경계한다. 부동산은 정부가 몽둥이로 때려잡는다고 잡히는 상품이 아니다. 노무현정부가 반면교사다. 2003년 봄 국회 연설에서 노 대통령은 "집값만큼은 대통령인 제가 직접 챙기겠다"고 말했다. 2005년 여름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고 다짐했다. 그해 8.31 대책을 내놓을 때 정부는 '헌법보다 고치기 어려운 부동산 제도'라고 자평했다. 결과는 딴판이다. 이른바 버블세븐 논란 속에 서울 집값은 참여정부 시절 되레 50% 넘게 올랐다. 시장은 줄줄이 나오는 정부대책을 비웃었다.

김 장관은 3선 중진의원으로 주로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법안 발의도 가장 적극적인 편에 속한다. 다만 우리는 유능한 국회의원과 유능한 장관이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면책특권 보호를 받는 의원은 비판이 주업이다. 반면 장관은 직접 정책을 짜고 실행에 옮기는 주체다. 의원과 장관은 언행이 달라야 한다.

일찍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부동산정책에 적용하면, 투기를 잡되 상인처럼 능숙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참여정부는 투기를 잡겠다며 으르렁거렸으나 역효과가 컸다.
숲(시장)은 보지 않고 나무(투기꾼)만 본 결과다. 공급을 늘리면 값은 떨어지게 돼 있다. 지금은 사자의 용맹보다 여우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