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나는 근로기준법 예외자입니다] "최저임금 올라도 임금은 안오르고 일하는 시간만 줄어"

(3) 감시단속직 제도 오·남용
감시단속직 신청 과정서 반강제로 근로자 동의 얻어 저임금.공짜야근.무한근로
감단직 5만5312곳 승인.. 6년간 취소사업장 32곳뿐

[나는 근로기준법 예외자입니다] "최저임금 올라도 임금은 안오르고 일하는 시간만 줄어"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내 경비실 모습.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르키고 있지만 경비실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박모씨(42)는 서울 강북의 한 아파트에서 5년째 기전(기계전기) 기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오전 6시 출근해 다음날 퇴근하는 격일제 근무를 하며 매달 180만원을 받는다. 박씨는 400세대 규모의 단지에서 발생하는 기계, 전기 고장, 각종 민원을 해결한다. 지난해부터는 배관공사, 조적(벽돌쌓기), 미장, 페인트 작업까지 맡으면서 대기 시간이 크게 줄었다. 그러나 사측은 올해 '감시단속직 근로자' 서류를 내밀며 동의를 요구했다. 박씨는 "회사가 관리반장을 모아놓고 직원 해고방법을 알려주기까지 한다"며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서울 강남의 A아파트에서 10년간 감단직(경비원)으로 일한 허모씨는 매일 2시간 가량 '공짜 야근'을 한다. 허씨는 휴게 시간인 새벽 0시부터 5시까지 경비실에서 잠을 자지만 주민들이 주차된 차량을 빼달라고 요구하면 곧장 나간다. 점심, 저녁 시간에도 택배 업무, 민원 처리가 이어진다. 추가 임금은 없다. 사측이 미리 휴게, 근무시간을 책정하는 '포괄임금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감단직종은 대법원이 지정한 대표적 포괄임금제 대상이다. 허씨는 "매년 최저임금이 오르면 임금을 올리는 게 아니라 휴게 시간을 늘린다"며 "늘어난 휴게 시간은 결국 일하는 시간"이라고 밝혔다.

■"근로자 동의 요건, 현장선 반강제적으로"

사용자들이 '감시단속직(감단직) 제도'를 오.남용한다는 지적이다.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해 감단직을 강제 적용하고 포괄임금계약을 맺어 무제한 공짜 야근을 시키기도 한다. 감단직은 근무시간을 특정하기 어려워 대표적인 포괄임금제 대상으로 꼽힌다.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제외된 감단직은 '적은 임금' '공짜 야근' '무제한 연장 근로' 등 삼중고에 시달리는 셈이다.

25일 현장 근무자, 노동계 등에 따르면 감단직 신청 과정에서 갖춰야 하는 '근로자 동의' 요건은 현장에서 반강제로 이뤄지고 있다. 계약직 근로자들이 사측 요구를 거부하면 해고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전기관리직으로 일하는 정모씨는 지난해 4월 용역업체가 강제로 '단속직'을 적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28명 근무자가 단속직을 모두 거부하자 업체는 다른 근무자에게 동의를 받고 승인을 받아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사측은 근무자들이 감단직 외 업무를 하더라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감단직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 B경비업체 관계자는 "감단직을 적용받지 못하면 업체도 이익이 전혀 남지 않는다"며 "감단직 신청 서류에는 주요 업무만 적고 있다"고 밝혔다. 감단직 신청을 위해 노무사 자문을 받기도 한다. C노무사는 "감단직이 적용되면 임금액이 10% 가량 줄어 다양한 문의가 온다"고 말했다.

감단직 적용은 사측과 근무자 사이에 포괄임금계약으로 이어진다. '근무 시간'과 '휴게 시간'을 미리 정해 계약을 맺는 것이다. 문제는 휴게 시간에 일을 하면 임금을 받아야 하지만 현장에서는 '공짜 노동'으로 인식된다는 점이다. 주휴수당, 가산수당을 이미 받지 못하는 감단직으로서는 이중 고통이라는 주장이다.

경기도에서 아파트 전기 작업자로 일하는 오모씨(64)는 "격일로 밤샘 근무를 하고 경비실에서 자다보니 건강이 악화됐다"며 "사측은 당연히 자는 시간에도 일을 시키고 거부하면 트집 잡아 계약 연장을 거부해 일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고용부 못믿어 직접 행정소송도

감단직에서 취소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근로자가 감단직 인.허가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점을 직접 규명해야 하지만 단기 근로계약 관계에서는 힘들기 때문이다.

파이낸셜뉴스가 고용노동부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고용부는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6년 간 사업장 5만 5312곳에 감단직 승인을 했지만 취소된 사업장은 32곳(0.05%)에 불과했다. 올해 승인 취소는 0건(승인 2600건)이다.


감단직 취소를 요구한 예술의 전당 시설관리직 28명은 지난해 6월 행정소송에 들어갔다. 정씨는 "근로감독관과 대화를 해보니 승인이 나기 전부터 '시설직은 감단직'이라고 표현했다"며 "고용부에 도움을 청하기 보다 행정소송을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한국노총 이상혁 노무사는 "감단직 제도가 임금을 적게 주기 위한 용도로 전락한 것 같다"며 "이들은 법률 적용에서 제외되는 근로자인만큼 사측에서 신청할 경우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