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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럭비공 특허정책이 면세점 위기 불렀다

유커 급감에 경영난 가중.. 규제 풀고 등록제 도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통하던 국내 면세점업계가 고사 위기에 내몰렸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중국인 관광객(유커)이 급격히 줄어든 탓이다. 한화갤러리아는 제주국제공항 면세점 특허권을 조기 반납하기로 했다. 매출의 80~90%를 차지하던 유커가 줄어 월 매출이 임대료(21억원)에도 못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 면세점 매출은 지난해의 20% 수준으로 오그라들었다. 인천.김포.김해 등 다른 주요 공항의 면세점과 시내면세점도 사정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면세점의 위기는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한국 여행 금지령이 떨어진 지난 3월 이후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 올 들어 5월까지 중국인 관광객은 200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줄었다. 주요 면세점 매출은 30~40% 급감했다. 반면 정부는 중국인 관광객 증가를 감안해 면세점 허가를 급격히 늘렸다. 2013년 40개였던 국내 면세점 숫자가 지난해 말 50개로 늘었다. 특히 서울 시내면세점은 2014년 6개에서 올해 말 13개로 늘어난다. 여기에는 면세점 특허심사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한 2013년 관세법 개정의 영향도 컸다. 특허 확보에 목을 맨 기업들의 과열경쟁과 무리한 투자가 리스크를 키웠다.

면세점은 원래 경기를 심하게 타는 업종이었다. 서울올림픽 특수가 사라진 1990년 한 해만 34개이던 면세점이 10개나 줄었다. 대기업인 한진, AK(애경)도 과거에 실적부진으로 특허권을 반납했다. 그럼에도 정부나 기업들은 유커 특수가 영영 계속될 것이라고 착각했다. 정부는 특혜 시비를 없애기 위해 특허를 남발했고, 기업들은 리스크를 따져보지 않은 채 특허권에 거액을 베팅했다.

위기에 처한 면세점업계가 간부들의 연봉 일부 반납, 매장 축소 및 영업시간 단축 등 구조조정에 나섰다고 한다. 올해 안에 시내면세점을 열어야 할 현대백화점, 신세계, 탑시티 등은 개장 연기를 건의했다. 공항 면세점들은 공항공사에 임대료를 깎아달라고 요구했다. 한화갤러리아에 이어 특허권을 반납할 업체가 생겨날 전망이다. 이제는 정부의 특허정책도 바뀌어야 할 시점이다. 정부는 특혜 시비를 없앤다며 특허수수료를 올리고, 특허권 심사 때 기업에 온갖 사회공헌 지출을 요구해왔다. 면세점이 줄줄이 죽어가는 판에 이런 규제가 무슨 의미가 있나.

면세점업을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전환할 필요성도 커졌다.
진입과 퇴출을 자유롭게 하면 경쟁력 있는 사업자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당장 정책을 전환하기 어렵다면 특허심사 기간이라도 5년에서 10년으로 다시 늘려야 한다. 이런 내용을 담은 관세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지만 국회는 외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