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에너지 전문가 417명 목소리 경청하길

"탈원전은 제왕적 조치" 전문가 의견 수렴해야

에너지 분야 전문가들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냈다. 국내외 60여개 대학 에너지 관련 학과 교수 417명은 5일 "5년마다 보완되는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2년마다 수정되는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문재인 대통령의 탈(脫)핵 선언만으로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고 비판했다. 이어 "신고리 원전 건설 중단에 앞서 탈원전 정책의 당위성을 전문가와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성명서를 낸 것은 두 번째다. 인원도 지난달 1차 때보다 곱절로 늘었다. 미국 퍼듀대, 미시간대 등 외국 대학 4곳의 교수도 참여했다. 문 대통령이 신고리 5.6호기 건설공사 계속 여부를 전문가가 배제된 시민배심원단에 맡기면서 상황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지식인들이 정권 초 성명까지 내가며 정부 정책에 강력 반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새 정부의 에너지정책이 일방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새 정부의 에너지정책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후보자에 탈원전 환경론자인 백운규 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를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전 건설은 에너지 안보, 중장기 전력수급, 전기료 수준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 결정한다. 신고리 5·6호기도 그런 과정을 거쳐 정부가 승인했다. 법적 지위도 없는 배심원단이 뒤집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최대 4조6000억원으로 예상되는 혈세 낭비도 문제다.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으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문 대통령의 최우선 국정과제인 일자리 만들기와도 거꾸로 간다.

40년 동안 축적된 원전기술 명맥이 끊길 수도 있다. 우리는 2009년 한국형원자로를 아랍에미리트연합에 수출한 원전 강국이다. 현재도 영국, 체코, 베트남 등에 원전 수출을 위해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원전 산업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당장 대학가에서도 난리가 났다. 전공을 바꾸거나 박사학위를 중도 포기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른다고 한다. 2015년 기준 학사, 석사, 박사 과정 재학생은 2955명이고 학사 학력 이상은 2만4243명이다.

급격한 에너지정책의 변화는 많은 문제를 낳는다. 새 정부가 모델로 삼은 대만은 이미 탈원전을 포기했다. 지난해 5월 취임한 차이잉원 총통은 6기의 원전 가운데 5기의 운전을 멈췄다. 하지만 지난달 3기를 다시 돌렸다.
전력예비율이 1%대까지 떨어지는 등 전력부족 현상이 나타나자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을 우려해서다.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마다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는 속담처럼 먼저 대비책부터 마련하는 게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