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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 스포트라이트 '문자폭탄' 표현의 자유인가, 그릇된 폭력인가] "X자식" "밤길 조심하라".. 욕설 넘어 섬뜩한 협박 문자도

<2>문자폭탄 실태
단순 의사표현 대부분이나 심각한 인신공격·비방도 많아
한국당, 문자폭탄 발신자 고발.. 국민의당, 문자폭탄 TF 구성
피해사례 수집 등 강경 대응

[fn 스포트라이트 '문자폭탄' 표현의 자유인가, 그릇된 폭력인가] "X자식" "밤길 조심하라".. 욕설 넘어 섬뜩한 협박 문자도
의견 표명을 넘어 지나친 욕설이나 의원 및 가족 신변 위협까지 서슴지 않는 문자폭탄에 대한 비판이 거센 가운데 일부 의원들이 받은 문자폭탄.

'문자 폭탄'일까 '문자 행동'일까. 한 진영에서는 '폭탄'이라고 일컫는 정치현상을 다른 진영에서는 '국민들의 정치참여'라고 해석한다. 이처럼 대의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직접민주주의의 또 다른 형태라는 의견이 공존한다. 자유한국당은 문자폭탄 발신자를 검찰에 고발하고 국민의당은 문자폭탄 태스크포스를 구성, 소속 의원들의 피해사례를 수집하는 등 강경 자세를 취하고 있다. 최근 국민의당은 문재인 대통령 아들 준용씨의 '취업 특혜 의혹 제보조작' 사건 범행에 공모한 혐의에 휘말리면서 문자폭탄 논란은 다소 뒷전이 된 듯한 분위기지만 내용은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정치 똑바로 해" "밤길 조심해라"

문자 세례는 탄핵정국 이후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 절정을 이뤘다. 청문회 과정에서 후보자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야당 의원들이 주 타깃이 됐다. 특히 이낙연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 아들의 병역 특혜 의혹을 제기한 경대수 자유한국당 의원은 '당신 아들도 군대 안 가지 않았느냐'는 문자 세례에 공개 해명하기도 했다. 청문회 때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주승용 국민의당 전 원내대표와 이언주 원내수석부대표는 쇄도하는 문자에 휴대전화 번호를 바꿨다. 이들은 받은 문자 내용은 "정치 똑바로 하세요" "수준 올리고 청문회 나오세요" "의원님, 사람 말 듣는 태도 좀 고치세요" "자료 확인은 제대로 하고 질문하는 거냐" "제정신이냐" 등 단순 의사 표현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의원님" "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 등 도배형 문자도 있다. 의원들 의정 활동을 방해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행위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의원들이 받은 문자에 섬뜩한 표현도 적지 않다는 점이다. "뚫린 입이라고 XXX 구분 못하고 막 내뱉네" "X자식아" "X쓰레기" "내 세금 내놔라 XXX놈아" "밤길 조심해라" 등 욕설과 협박부터 "네 마누라를 사창가에 팔아넘긴다 두고 봐라" "네 가족들을 죽인다" 등 표현의 자유로 치부하기에는 심각한 인신공격과 비방이 있다.

이에 따라 한국당은 지난달 소속 의원들에게 온 문자 폭탄 수만건 중 지나친 욕설이나 의원과 가족 신변 위협이 포함된 153건을 추려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최근에는 문자폭탄 대상에 여야 구분이 없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동안 주로 야당 의원들에 집중됐으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방침을 비판하는 여당 의원들도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여당에 첫 폭탄이 쏟아진 것은 지난달 22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여러 저서에서 발견되는 탁현민 행정관의 여성 비하적 가치관에 문제가 있다며 민주당 여성의원들과 그같은 뜻을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인터뷰 이후 여성의원들 휴대폰이나 의원 사무실에는 항의 문자와 전화가 쇄도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도 항의 댓글이 이어졌다.

특히 인터뷰를 한 백 의원의 경우 '탁현민이 뭘 그렇게 잘못했냐' '일개 행정관에게 왜 그러냐' 등 항의전화가 쉴새 없이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백 의원 인터뷰 이후 하루 이틀 정도 의원실이나 당사로 항의 전화와 문자 등이 쏟아졌다. 많은 여성 의원들이 이런 일을 겪었고 특히 인터뷰를 직접 한 백 의원은 쏟아지는 항의 전화와 문자로 곤욕을 치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문자폭탄 보낼거면 국회의원 왜 뽑나"

일각에서는 정부에 비판적인 여당 인사 대상 문자 세례가 예견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작성한 '개헌 저지 보고서'에 비판적 의견을 내놓은 김부겸 민주당 의원(현 행정자치부 장관)은 하루에만 수천개 문자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김 의원과 함께 문자메시지를 받은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문자폭탄이 오는데 맥락도 없이 그냥 내부총질하지 말란다. 이젠 고민도, 정확한 근거도 없이 기계적으로 보낸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문자폭탄이라는 수단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대의민주주의인 만큼 선출한 국회의원의 자율성 등을 존중해야 하는데 의견 개진이라고 문자를 일일이 다 보내면 국회의원을 왜 뽑은 건가"라며 "지금 같은 성격의 문자폭탄은 정부를 옥죄는 족쇄나 부메랑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상철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장은 "문자폭탄은 양면성을 지닌 일종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의미의 집단적 의사표시로 본다면 공인의 경우 받아들일 수 있는 법이고 시민들 정치참여 의식이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라면서도 "문자폭탄이 지속적으로 업무를 방해한다거나 특정 세력을 위한 조직적 행위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스포트라이트팀 박인옥 팀장 박준형 구자윤 김규태 최용준 김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