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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新베를린선언] 北 도발에도 '평화체제' 전면에… 대화·교류·경협 제시

규탄보다는 대화에 방점.. "흡수통일 추진 안할 것"
비정치적 사업 분리추진 등 새정부 대북정책 방향 제시
군사분계선 적대행위 중단.. 평창올림픽 北 참가 제안도

[文대통령 新베를린선언] 北 도발에도 '평화체제' 전면에… 대화·교류·경협 제시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현지시간) 구 베를린 시청 베어 홀에서 개최된 쾨르버재단 초청연설에서 한반도 평화 구상, 소위 신 베를린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에 대화의 손을 다시금 내밀었다. 동서의 장벽을 허물고 통일을 이룬 독일 베를린에서의 이른바 '신(新) 베를린 선언'을 통해서다. 그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남북 간 대화를 재개해야 한다면서 사실상의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했다. 지난 4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도 대화에 방점이 찍힌 대북 구상을 내놓은 것이다.

문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독일 옛 베를린 시청에서 쾨르버재단 초청으로 연단에 올라 "여건이 갖춰지고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전환시킬 계기가 된다면 언제 어디서든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면서 대화 재개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는 "핵 문제와 평화협정을 포함해 남북한의 모든 관심사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협력을 위한 논의를 할 수 있다"면서 북한의 결단을 촉구했다.

■규탄보다는 대화에 방점

문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한 규탄으로 시작됐다. 그는 북한의 도발을 '매우 실망스럽고 대단히 잘못된 선택'이라고 규정했고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를 정면으로 거부해 응징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대화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보한 것과 관련해 "모처럼 대화의 길을 마련한 우리 정부로서는 더 깊은 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탄식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이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다독였고 한편으로는 "핵 도발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더욱 강한 제재와 압박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이날 선언의 핵심은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고 나오겠다는 데 있다.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을 계승해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대화를 택하겠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존중을 통한 평화 실현 △북한 체제의 안전 보장하는 비핵화 추구 △항구적인 평화 체제 구축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 실천 △비정치적 교류협력사업 분리 추진 등을 새 정부의 대북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체제 유지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위해선 남북 간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게 우선이라고 본 것이다. 이에 북한이 경계하는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틈틈이 북한의 태도 변화가 모든 제안의 전제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고삐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라며 "북한이 핵 도발을 전면 중단하고 비핵화를 위한 양자대화와 다자대화에 나서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북한의 선택에 따라 국제사회가 함께 보다 밝은 미래를 제공할 수 있다"면서 "대화의 장으로 나오는 것도, 어렵게 마련된 대화의 기회를 걷어차는 것도 오직 북한이 선택할 일"이라고도 했다.

■이산가족 상봉행사 등 액션플랜도

특히 10.4 공동선언 10주년인 올 추석을 전후한 이산가족 상봉행사 개최를 비롯한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내놓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문 대통령은 이와 함께 내년 2월 열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선수단 참가와 휴전협정 64주년을 기점으로 한 군사분계선에서의 적대행위 상호 중단, 남북 간의 대화 재개 등도 제안했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운전석'에 앉겠다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대화 재개에 대해서 "한 번으로 되지 않을 것"이라며 "시작이 중요하다. 자리에서 일어서야 발걸음을 뗄 수 있다"면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거듭 촉구했다.

당초 북한의 미사일 도발로 '톤 다운'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이날 선언에는 비교적 진전된 문재인정부의 대북 구상이 담겼다.
청와대 관계자는 "미사일 도발과 관련된 메시지가 추가됐을 뿐 대북 제안 등의 연설문은 원래 계획됐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귀띔했다.

다만 일각에선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국제사회 분위기가 강경하게 흘러가는 상황에서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홍규덕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부의 대북 구상을 알리는 효과는 있겠지만 지금의 국제사회 흐름을 보면 보다 강한 톤이 필요한 시기"라며 "한.미 간 입장차가 부각되면서 북한에 여지를 많이 주는 것으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는 만큼 G20 정상회의에서 충분히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hkim@fnnews.com 김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