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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훈 칼럼] 최저임금 지속가능성 '제로'

정부 입김에 이례적 고율 인상 세금으로 임금 지탱할 수 없어
자영업자의 폐업·감원 불보듯

[이재훈 칼럼] 최저임금 지속가능성 '제로'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16.4%나 올리겠다는 지난 15일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에 온 세상이 경악했다. 하지만 나에겐 인상폭보다 그 같은 인상에 이르게 된 과정이 미스터리였다. 과거 최저임금위의 결론 도출 과정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16.4% 인상으로 후퇴한 것도, 경영계가 막판에 12.8% 인상안(7300원)을 낸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공익위원들이 절충안을 제시하지 않고 노동계안에 몰표를 준 것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의문을 푸는 열쇠는 정부가 갖고 있었다. 위원회 안팎의 얘기들을 종합하면 기획재정부는 협상 막판에 최저임금 인상분 중 절반(8%포인트) 정도를 지원하겠다는 정부 대책을 설명하며 고율 인상을 독려했다고 한다. 파격적인 정부 제안에 모두들 인상률을 높여 쓸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건 엄밀히 말해서 정부의 꼼수다. '2020년 최저임금 1만원'이란 공약에 집착한 나머지 세금을 동원해 최저임금을 떠받친다는 비판을 면할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임금을 주는 중소기업.영세자영업자들이 16%의 고율 인상을 감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정부가 인정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 성장을 통해 사람 중심의 국민 성장시대를 여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득 주도 성장'의 실험 대상으로 최저임금을 지목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정부는 두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임금을 세금으로 메우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둘째, 이런 재정지원이 과연 충분하며 지속가능한 방식이냐다.

중소기업들은 내년에 15조2000억원을 추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 지원 3조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는 2020년에는 연간 인건비 추가부담액이 81조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정이 무슨 요술방망이도 아니고 이 많은 돈을 정부가 계속 감당할 수는 없다.

올해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15위지만 1인당 국민소득(GNI) 대비 최저임금은 5위, 내년에는 3위에 오른다. 이는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이 한계에 왔다는 점을 시사한다. 최저임금을 가파르게 올렸던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경험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워싱턴대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시애틀시가 최저임금을 9.47달러에서 11달러로 인상한 2015년에는 고용이 줄지 않았다가 13달러로 올린 2016년에는 고용이 7%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57만원이다. 여기에 주휴수당 등을 합치면 실제 월급은 200만원에 육박한다. 반면 소상공인의 월평균 영업이익이 187만원이다. 자영업자는 폐업하고 알바를 뛰는 게 차라리 낫다는 하소연이 빈말이 아니다. 이정민 서울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10% 오르면 고용은 1.4%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저임금 근로자의 85%가 중소.영세기업에서 일한다는 게 문제다.

꼼수로 만든 현재의 최저임금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정부는 우선 최저임금 1만원이란 수치목표를 포기해야 한다.
최저임금 관련제도도 개선해야 한다. 최저임금에서 빠져있는 상여금, 식비 등을 포함시키도록 산입범위를 확대하고 지역별.업종별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폐업과 고용감소, 즉 '최저임금의 역설'을 피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