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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증세, 정권 명운을 걸 자신 있나

부자증세 한정짓지 말고 누더기 조세 바로잡아야

증세 얘기가 또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와 행정안전부 김부겸 장관이 20일 불을 지폈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을 이행하려면 줄잡아 178조원이 든다. 이 큰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는 만무다. 결국 납세자 지갑에서 나와야 한다. 증세를 둘러싼 솔직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증세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요인은 많다. 한국은 소득격차가 가장 큰 나라로 꼽힌다. 이는 공동체 정신을 허문다. 이때 조세는 소득분배를 고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한국은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조세부담률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뒤집어 보면 그만큼 우리한테 세금을 더 걷을 여유가 있다는 뜻이다. 박근혜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약속했지만 뒤로 담뱃세를 올리는 꼼수를 썼다. 문재인정부는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증세는 정공법으로 다뤄야 한다.

추 대표는 대기업 법인세율과 고소득자 소득세율을 올리자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가진 자를 혼내는' 정치적 접근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그보다는 조세 전반을 놓고 그야말로 공론을 모아야 한다. 소득세는 근로자 절반이 면세다. 얼마를 벌든 단 1000원이라도 소득세를 내게 할 순 없을까. 그래야 복지는 공짜가 아니라는 걸 안다. 이는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의 대원칙에도 맞다.

법인세를 우리만 중뿔나게 올리는 게 맞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기업들은 틈만 나면 밖으로 빠져나가려 한다. 해외에 투자한 돈을 국내로 유치했다면 일자리 수십만개를 만들 수 있다는 통계도 있다. 법인세는 '해외쇼핑'이 가능한 독특한 세목이다. 법인세에 손을 댈 땐 세상을 넓게 보는 안목이 필수다.

소득.법인세와 함께 3대 세목으로 꼽히는 부가가치세는 어쩔 텐가. 부가세는 40년째 세율이 10%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네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사실상 전 국민이 납세자인 부가세는 조세저항을 우려해 역대 어느 정권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다. 부가세를 성역으로 남겨두는 바람에 조세체계가 누더기가 됐다.

증세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다. 이웃 일본에선 소비세(부가세) 인상으로 정권이 갈렸다.
아베 총리가 두번씩이나 소비세율 인상을 연기한 이유다. 문재인정부가 증세를 제대로 하려면 정권을 걸어야 한다. 그럴 용기가 없다면 증세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는 게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