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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김동연 부총리는 왜 '유감'이라고 했을까

공공연히 경제사령탑 '패싱'
증세안 후다닥.. 후유증 우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유감'을 표명했다. 지난달 말 기자들을 상대로 증세안을 사전 브리핑하는 자리에서다. 김 부총리는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시장에 일관된 메시지를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청문회 이후 명목세율 인상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말을 4차례나 했다. 하지만 그 말은 식언이 됐다. 김 부총리는 "앞으론 시장과 국민들에게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경제팀과 함께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경제사령탑이 증세안을 놓고 유감의 뜻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증세를 결정하는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김 부총리는 '패싱' 당했다. 자기도 모르는 새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 총대를 멨고 이어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구체적으로 세율까지 거론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를 추인했고, 결국 증세안은 정치권 뜻대로 됐다. 이 과정에서 김 부총리와 기재부는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김 부총리는 뭐가 '유감'이라는 걸까. 정책의 일관성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맥을 보면 다른 뉘앙스도 느껴진다. 그는 스스로를 '경제를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했다. 듣기에 따라선 '시어머니' 정치권과 청와대를 향해 강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기재부가 하는 일 가운데 조세만큼 중요한 정책은 없다. 그런데 그 수장이 구경꾼 취급을 받았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는 되도록 정치색을 버리는 게 좋다. 정치적 선의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이번 부자증세안엔 이념이 잔뜩 묻어 있다. 기재부도 이를 거르지 못했다. 절차를 건너뛰면 탈이 난다. 증세안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예측불허다.

김동연 부총리는 "(증세는) 굉장히 민감해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경제수장으로서 신중하게 접근할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조세정책은 마땅히 그래야 한다. 하지만 정치가 끼어들어 서둘다 보니 공론을 묻는 절차는 깡그리 생략됐다. 그 흔한 공청회 한 번 안 했으니 말 다 했다.

그러다 보니 이른바 J노믹스는 벌써 뒤죽박죽이다. 추가경정예산 편성은 부양책이다. 증세는 긴축이다. 액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은 꼴이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라는 건지 헷갈린다. 증세는 자칫 성장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김 부총리 말마따나 세금은 굉장히 민감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종합부동산세, 박근혜 대통령은 담뱃세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문재인정부는 세금을 너무 쉽게 대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