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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예산 쥐어짠다고 공약재원이 나올까

박근혜정부 때 잘못을 왜 또 뒤쫓아가려 하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려면 178조원이 든다. 이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60조원은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하기로 했다. 예산을 쥐어짜겠다는 뜻이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주 새해 예산안 당정 협의에서 "재정의 양적.질적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며 "11조원 수준의 세출 구조조정을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60조원을 만들려면 5년간 해마다 12조원씩 나와야 한다. 과연 이 작업이 잘 이뤄질까.

선례를 보면 부정적이다. 문 대통령의 공약가계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가계부를 닮았다. 박 전 대통령은 135조원짜리 가계부를 내놨다. 지하경제 양성화 등 세입확충으로 51조원, 지출 구조조정을 비롯한 세출절감으로 84조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점수를 매기면 D학점도 아깝다. 박근혜정부는 담뱃세에 손을 대는 꼼수를 썼고, 이는 민심 이반을 불렀다.

지출 구조조정은 성공 확률이 제로에 가깝다. 관료 조직은 파킨슨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다. 인력과 예산은 업무량과 상관 없이 늘게 돼 있다. 부처별 칸막이는 또 다른 걸림돌이다. 대통령 공약을 이행하려면 복지비를 늘려야 한다. 비복지 분야 부서가 한발 양보해야 가능한 일이다. 과연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가 칸막이를 헐고 선뜻 기득권을 양보할까. 문재인정부 내각엔 정치인 또는 캠프 출신 실세 장관이 즐비하다. 이들이 예산을 총괄하는 김 부총리의 말을 고분고분 따를지도 의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증세를 통한 세수 확대만이 유일한 재원대책이 아니다"라며 "기존의 재정지출을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해서 세출을 절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듣기엔 좋은 말이지만 현실성은 떨어진다. 하늘에서 돈벼락이 떨어지면 모를까, 세금을 걷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복지도 산타클로스 정책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다.

지난주 당정 협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은 "내년 예산에서 병사 급여를 대폭 올릴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보듯 국회는 지출 구조조정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벽이다. 예산안 심사 때 보면 정부 부서와 해당 국회 상임위는 한통속으로 돌아간다.

예산에서 60조원을 쥐어짜겠다는 발상은 허상이다. 괜히 헛심 쓰지 말고 현실적 해결책을 찾는 게 낫다. 증세가 한동안 없을 것처럼 굴다 날벼락처럼 법인.소득세를 올리는 식이 되풀이돼선 곤란하다.
박근혜정부의 담뱃세 인상과 같은 꼼수는 최악이다. 중복지로 가려면 중부담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꾸준히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보편적 증세 외엔 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