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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기업을 벼랑으로 내모는 통상임금 판결

기아차 노조 1심 부분승소.. 개념·범위 등 법제화 시급

법원이 기아자동차 노사 간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근로자에게 지급된 정기상여금과 중식비가 통상임금으로 인정된다며 3년치 밀린 임금 4223억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노조가 청구한 금액의 39%를 인정했다. 서울중앙지법은 8월31일 기아차 노조원 2만7000여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이에 따라 기아차의 실제 부담액은 1조원 안팎으로 추산돼 회사가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기아차는 당장 올 3.4분기에 적자전환이 불가피하다. 또한 이번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115개 기업의 통상임금 관련소송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경제계 전반에 큰 파장을 부를 전망이다.

이번 소송의 최대 쟁점은 재판부가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을 인정할 것인가였다. 2012년 대법원 판결처럼 기아차의 정기상여금은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이 인정돼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었다. 그러나 2013년 대법원은 "통상임금을 인정하더라도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할 경우 신의칙에 따라 임금 소급분을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기아차 사측은 신의칙을 적용해 추가 지급을 면하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기아차가 상당한 이익을 거뒀기 때문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신의칙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오락가락 종잡을 수가 없다. '경영상 어려움'에 대한 명시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금호타이어.현대중공업.한국GM의 통상임금 소송에서는 신의칙이 인정됐다. 성격이 같은 통상임금 소송인데 재판부가 기업의 경영.재무 상태를 자의적으로 판단해 소급분을 누구는 주고 누구는 주지 말라 했다.

통상임금 판결이 그때그때 다르니 기업의 노사는 개별적인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기업이 소송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과거 대다수 기업이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빼기로 합의했는데 2012년 대법원이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하면서 혼란이 커졌다. 이 때문에 통상임금의 개념과 범위,소급청구 기준 등을 법제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특히 신의칙 적용의 세부지침을 마련해야 기업 현장의 혼란을 줄일 수 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엊그제 국회를 방문해 "통상임금을 명확하게 법에 규정해달라"며 조속한 입법조치를 건의했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조차 "통상임금 판결이 한국 산업의 경쟁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법적 규제를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국회에는 통상임금 관련 법안들이 제출돼 있다. 여야는 기업의 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입법화를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