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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조세硏 블라인드 채용 비판 일리 있다

방향 옳지만 준비 부족해.. 강요보다 자율에 맡겨야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블라인드 채용이 응시자의 직무능력 평가보다는 필기시험 성적에 의존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지적이 국책연구기관으로부터 나왔다. 객관성 있는 인적 정보가 차단됨에 따라 사적 관계에 의한 청탁 등 부정이 개입할 소지도 다분하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공공기관 채용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고'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문제 제기를 했다. 기획재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기재부 정책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정부는 지난 7월부터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출자출연기관 등에 블라인드 채용을 의무적으로 시행토록 하고 있다. 블라인드 채용은 입사지원서에 학력, 출신 지역, 가족관계, 신체조건 등의 기재와 사진 부착을 금지한다. 면접관도 이와 관련된 사항을 물을 수 없다. 한마디로 학력.지역 차별을 없애고 스펙보다 직무능력을 기준으로 뽑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성'을 실현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방법이 좋지 않으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어렵다. 초기 시행 단계에서 적지 않은 문제점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학력은 응시자의 능력을 판별하는 중요한 요소다. 모집기관들은 응시자가 어느 대학, 어느 분야를 전공했으며 학점은 어떤지 등을 알아야 적합한 인재인지를 알 수 있다. 학력 차별과 차이는 구분돼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다. 블라인드 면접을 공정하게 실시하려면 적절한 장치와 역량이 있어야 한다. 직무능력과 성과를 합리적으로 평가.보상하는 조직체계가 갖춰져야 하고, 신뢰할 만한 도덕성을 갖춘 면접관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연공서열식 조직 운용에 익숙한 공공기관들이 블라인드 채용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공공기관들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직무능력 평가가 어려워지면 결국 필기시험 성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명문대 편중이 심화돼 지방대 취업문은 더 좁아질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취업은 인생의 중대사이며, 기관에도 유능한 인재 채용은 경영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 업무다. 이처럼 중요한 취업제도를 어느 날 갑자기 시행하라고 강요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정부는 몇 개 그룹으로 나눠 단계적으로 시행하되 시행 시기를 공공기관들이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