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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꼭 이해진을 '총수' 틀에 가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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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전 잣대로 기업 발목.. 대기업 규제 틀 다시 짜야

공정거래위원회가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를 준(準)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했다. 총수로 지정되면 자신과 친족이 소유하는 기업에 대해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받는 등 법적 책임이 훨씬 무거워진다. 네이버 측은 즉각 반발했다. 아직은 검토 단계지만 행정소송도 불사할 태세다. 공정위의 총수 지정이 재량권을 남용했는지 법적 판단을 받아보겠다는 얘기다.

그동안 이해진 창업자의 총수 지정을 두고 논란이 많았다. 지난달 그는 공정위를 찾아 자신의 네이버 지분이 5% 미만이고, 주주 중심의 투명경영을 하는 만큼 네이버를 '총수 없는 기업'으로 지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재벌 총수의 부정적 이미지가 해외사업에 걸림돌이 된다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공정위의 결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형평성을 감안한 결과다. 현재 57개 대기업집단 가운데 총수가 없는 기업은 포스코, KT, GM대우 등 공공성이 강하거나 외국계 기업 등 8곳뿐이다. 순수 민간기업은 하나도 없다. 네이버도 20년 동안 급성장해 덩치가 커졌으니 현행법 아래서 일정 수준의 감시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거의 잣대로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를 규제하는 게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느냐다. 대기업집단 제도는 재벌의 불법적인 부의 세습을 막기 위해 30년 전인 1987년 도입됐다. 하지만 과거 문어발식 사업확장을 하던 재벌과 최근 서비스.ICT 업종은 성장방식이 확연히 다르다. 지금 글로벌 무대를 휘젓는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이 폭풍성장한 것은 불과 10년 안팎이다. 이들이 한국 기업이라면 이렇게 성공했을지 의문이다.

대기업집단 지정 기준이 매년 논란이 되자 정부도 개선안을 마련 중이다. 자산규모 5조원, 10조원이 아니라 미국처럼 국내총생산(GDP)의 0.5%, 1%식으로 연동해 놓는 방식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도 이런 방식에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 또한 근본대책이 아니다. 기업을 크기로 규제하니 피터팬신드롬이 나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사후규제로 가는 게 맞는 방향이다. 정부가 매년 중소.벤처기업을 지원한다며 십수조원의 세금을 뿌리지만 20년째 네이버 같은 회사는 나오지 않고 있다. 낡은 제도가 제2, 제3의 네이버 탄생을 막는 건 아닌지 곱씹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