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fn사설] ‘드리머’ 논란 속 트럼프에 맞선 美 기업들

"불법체류 청년 추방" 결정에.. 저커버그 "잔인한 처사" 비판

미국이 '드리머(Dreamer)' 프로그램 폐지를 놓고 둘로 갈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이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5년 전 이 제도를 도입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드리머' 폐지를 "잔인하다"고 비판했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재계 리더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반기를 들었다.

'드리머'의 정식 이름은 다카(DACA.Deferred Action for Childhood Arrivals)다. 불법체류자 부모를 따라 어릴 때 미국으로 들어온 청년이 80만명에 이른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이들에겐 죄가 없다"며 2012년 다카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비록 부모가 불법체류자라도 자식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좇을 수 있다는 뜻에서 이 프로그램을 '드리머'라고 불렀다.

하지만 트럼프는 행정명령이 의회 입법권을 무시하는 위헌이며, 합법적 이민자에게 불공평하다는 이유를 들어 다카 프로그램을 폐지했다. 또 이 프로그램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앗아간다고 주장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가 관련 입법을 처리할 때까지 6개월 유예기간을 뒀다. 이제 공은 의회로 넘어갔다.

'드리머' 폐지 발표로 동포사회에도 비상이 걸렸다. 불법체류 청년은 대부분 멕시코계이지만 한국계도 적게는 7000명, 많게는 1만명이 있다. 아시아계로는 가장 많은 숫자다. 이들은 6개월 뒤에 자칫 한국으로 추방될 위기를 맞았다. 우리 외교당국이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드리머' 논란에서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이 보인다. 현직 대통령의 결정에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는 점이다. 저커버그는 "다카 폐기 결정은 젊은이들이 정부를 신뢰하도록 하려는 노력을 잔인하게 짓밟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애플의 팀 쿡 CEO는 "애플은 '꿈꾸는 사람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의회와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IBM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기업이 권력에 맞서 자유롭게 제 뜻을 밝힐 수 있는 환경이 부럽다. 우리는 어떤가. 기업인이 청와대로 불려가면 고양이 앞에 쥐 신세가 된다. 지난봄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눈치 없이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어깃장을 놨다 본전도 못 찾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존재감을 잃은 뒤 재계를 대변하는 목소리도 사라졌다. 작은 기업부터 큰 기업까지 아우르는 상공회의소(상의)는 대변자로 한계가 있다.
개별기업은 입을 꼭 다물고 있다. 정치가 기업 자율을 존중하는 풍토에서 페이스북.구글 같은 혁신기업이 끊임없이 솟구친다. 미국 '드리머' 논란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또 다른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