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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김상조·이해진 논란, 그 자체로 반갑다

정권·기업 갑을 관계 벗어야.. '괘씸죄' 용어 다신 안나오길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를 '총수'로 지명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포털 다음을 창업한 이재웅씨는 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이해진을 감쌌다. 며칠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이해진을 슬쩍 깎아내린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 전 의장(이해진 창업자)은 (스티브) 잡스처럼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재웅씨는 "맨몸으로 정부 도움 하나도 없이 한국과 일본 최고의 인터넷 기업을 일으킨 사업가를 김 위원장이 이렇게 평가하는 것은 오만"이라고 말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런 논란이 공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반갑다. 여태껏 정부(정권)와 기업은 전형적인 갑을 관계였다. 최순실 사태에서 보듯 기업들은 정권 앞에서 쩔쩔맸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이런 관계에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고위 간부는 새 정부의 정규직 전환정책에 태클을 걸었다 혼쭐이 났다. 그 뒤로 재계는 여러 현안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침묵은 올바른 관계가 아니다. 강요된 침묵은 겉으론 복종하는 듯하지만 속으론 들끓는다. 그러다 언젠가 터진다. 뻥 터지느니 그때그때 바람을 빼는 게 좋다. 그 점에서 이재웅씨는 적절한 역할을 맡았다. '오만'이란 용어를 놓고 또 다른 논란이 일자 이씨는 뒤늦게 '오만'을 '부적절'로 수정했지만 기죽을 것 없다. 감히 어떻게 '재계 저승사자'인 공정거래위원장과 맞붙을 수 있느냐는 말이 있지만, 그런 인식 자체가 구닥다리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정부와 기업 관계는 갑을이 아닌 대등한 파트너가 돼야 한다.

미국을 보라. 연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겠다고 하자 많은 기업들이 반대했다. 지난주엔 불법체류 중인 청소년들을 추방하겠다는 발표가 나오자 실리콘밸리가 일제히 반기를 들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잔인'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아무리 막 나가는 트럼프라도 저커버그를 괘씸죄로 괴롭히는 일은 없다. 이처럼 대등한 관계 위에서 미국은 혁신의 메카가 됐다.

네이버와 이해진이 다 잘했다는 건 아니다. 김 위원장 말에도 일리가 있다. 네이버는 국내 1위 인터넷 기업답게 골목에서 자잘한 수익을 올리기보다는 밖에서 더 큰 뜻을 펼쳐야 한다. 이해진을 재벌 '총수' 올가미에서 풀어주는 것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취임 석달을 맞은 김상조 위원장은 속 좁은 인물이 아니다.
이참에 낡은 재벌정책의 틀이 과연 21세기에도 유효한지 깊이 들여다보길 바란다. 그러려면 재계와 활발한 소통이 필수다. 쓴소리를 내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