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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포퓰리즘 정치에 쓴소리 던진 슈뢰더

"정권 잃어도 할 일은 해야" ..인기없는 개혁이 경제 살려

2000년대 초 강력한 노동.복지 개혁정책으로 '유럽의 병자' 독일을 살려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한국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 자서전 한국어판 출간을 위해 방한 중인 슈뢰더 전 총리는 엊그제 언론 인터뷰에서 "대중은 작은 손해만 봐도 개혁에 반대한다"며 "리더라면 정권을 잃더라도 국익을 위해 인기 없는 결정을 내릴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가를 위해 고통을 수반하는 개혁정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이런 신념을 실천했기 때문에 그의 발언은 울림이 남다르다.

좌파 사회민주당 소속의 슈뢰더 전 총리는 독일이 고실업과 경제침체에 신음하던 2003년 노동시장 유연화, 사회보장제도 축소 등의 개혁정책을 담은 '어젠다 2010'을 발표했다. 지지기반인 노조와 사민당 내부까지 강력하게 반발했다. 결국 슈뢰더는 2005년 총선에서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기독민주당에 패해 총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후임 메르켈 총리는 슈뢰더의 개혁정책을 충실히 계승했고, 독일 경제는 부활했다.

슈뢰더는 독일과 한국이 선진 산업국으로서 유사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봤다. 양국 모두 치열한 국가 간 경쟁 속에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 중이며 디지털화로 인해 새로운 노동모델이 요구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새로운 과제들을 적절히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노동.복지 개혁의 수단으로서 노사정 대타협에 대해서는 "타협이 안 될 때는 정부가 나서야 한다"며 '정부 주도'를 강조했다.

문재인정부는 양극화.불평등 해소와 복지확대, 소득주도 성장을 위해 정부가 모든 것을 다 해줘야 한다는 '착한 정부 강박증'에 빠져있는 듯하다. 아동수당, 기초연금 인상, 건강보험 보장 확대 등 굵직한 복지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고 비정규직 제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노동정책을 밀어붙이는 중이다. 재정부담을 늘리는 돈 퍼붓기 정책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구조개혁도, 노동개혁도 이 정부에선 실종 상태다.
정부는 독일 경제를 회생시킨 슈뢰더의 충고를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모두가 달콤해하는 포퓰리즘 정책은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현 정부는 정권을 잃을 각오로 구조개혁에 나설 용기가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