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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획일적인 '비정규직 제로' 비현실적이다

도처에서 갈등만 부추겨.. 선악 이분법 시각 버리길

교직사회 내 논란이 많았던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 전환이 결국 무산됐다. 교육부는 11일 국공립학교 기간제 교사와 영어회화 전문강사 등 3만2000여명을 지금처럼 비정규직으로 두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채용상 공정성과 교육 현장의 안정성 훼손 등을 이유로 들었다. 하늘의 별 따기라는 임용시험을 치른 정규직 교사와의 형평성을 감안하면 불가피한 조치다.

사실 이번 사태는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화를 밀어붙이면서 예견됐던 일이다. 교육부에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가 가동된 40여일 동안 상생의 가치를 가르쳐야 할 교단은 둘로 쪼개졌다. 기간제 교사의 정규직화를 요구한 쪽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파기"라며 반발하고 있어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현실을 외면한 책상머리 행정이 갈등만 부추긴 꼴이다.

교단뿐만이 아니다. 공공기관과 기업, 대학 등에서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올 연말까지 자회사를 설립해 60개 외주회사 소속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일감을 잃을 처지에 놓인 외주사들이 계약해지 관련 가처분신청과 손해배상 소송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에서는 고령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오히려 정규직화에 반대하고 있다. 정규직이 될 경우 60세 정년 적용을 받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과 처우에서 차별받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 양극화의 주범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만은 분명하다.

문제는 선의가 결과까지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든 근로자를 정규직화하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써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이 근로자에게 유리한 상황도 있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정규직은 무조건 옳고 비정규직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시각으로는 올바른 정책을 펼 수 없다.

마침 한국을 찾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조언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는 그제 출국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경제성장 속도에 맞춰 합리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면 저숙련자를 도태시키는 부작용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현장에서 다양한 이견이 나오는 다른 사안들도 재검토하길 바란다. 이젠 반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