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훈 칼럼]

따귀 빼고 기름 뺀 규제개혁

잡초처럼 생명력 질긴 규제 넓고 신속·과감하게 수술해야.. 文정부 의지 잘 보이지 않아

문재인정부도 마침내 규제개혁의 깃발을 내걸었다. 정부는 최근 신기술에 대해 규제 없이 실험을 할 수 있는 '규제 샌드박스'와 사업을 일단 허용한 뒤 문제가 생기면 규제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발표했다. 줄곧 소득 주도 성장을 외치던 정부가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개혁 정책을 제시한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런데도 새 정부가 말하는 규제개혁은 울림이 크지 않다. 실체가 불분명한 혁신성장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띄운 애드벌룬이 아닌가 하는 의심 때문이다.

지역별로 미래 전략산업을 육성하자는 규제프리존 특별법과 원격의료 허용 등의 내용을 담은 서비스산업 발전기본법 처리를 외면해온 정부.여당이 무슨 규제개혁을 말하느냐는 지적은 백번 지당하다. 규제개혁의 대상을 신기술.신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 특정 분야로 한정한 것은 심각한 방향 착오다. 대기업과 제조업.서비스업 등 기존 산업의 규제는 내버려두겠다는 뜻이 아닌가. 업종이나 규모에 관계없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는 다 때려부수겠다고 덤벼들어도 잘 되지 않는 게 규제개혁이다.

'착한 규제'는 놔두고 '나쁜 규제'만 없애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일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규제를 '원수이자 암덩어리'라고 했지만 세상에 명분 없는 규제는 없다. 안전과 환경, 소비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익.재산권 보호 등을 이유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진보진영에서는 규제를 우호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진보 정당에서는 '규제=필요악' '규제완화=대기업 특혜'라는 논리를 내세우곤 한다. 하지만 그 '착한 규제'가 진입장벽 또는 경쟁제한적 요소로 인해 특정 이익집단이나 규제 권력을 휘두르는 공무원.정치인의 이익을 옹호하는 '나쁜 규제'로 둔갑하기도 한다.

규제는 뽑아도 뽑아도 되살아나는 질긴 잡초와도 같다. 역대 정부는 하나같이 규제개혁을 외쳤으나 국민이 체감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던 박근혜정부의 규제개혁 1호 과제는 푸드트럭 합법화였다. 2015년 합법화 이후 전국에서 개조된 푸드트럭은 1500여대에 달하지만 등록된 것은 448대(5월 기준)에 그쳤다. 70%의 푸드트럭이 폐업했거나 불법으로 영업하는 것이다. 푸드트럭 업자들은 "인적이 드문 공원.유원지 같은 곳에서 장사가 되겠느냐"고 하소연한다. 지자체 공무원들은 기존 상인들의 눈치를 보며 영업지역을 제한한다.

2015년 12월 스마트폰으로 버스를 호출하는 심야 콜버스 서비스를 내놓은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 '콜버스'는 불법 운수업 혐의로 택시업계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심야 콜버스 운행을 허용하면서 사업권을 택시.버스사업자에게만 주기로 했다가 거센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결국 국토부는 콜버스 측이 택시업계의 차량을 빌려 영업하도록 했지만 콜버스의 사업성은 완전히 추락했다. 콜버스는 조만간 사업을 전세버스 예약 중개서비스로 전환할 계획이다.

이런 사례들은 이익집단.기득권 세력과 공무원들이 규제개혁의 최대 장애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루기 만만한 규제는 없다. 자율주행차·드론 운행에는 안전을 문제 삼은 반대론이 나오고 있고 빅데이터사업은 개인정보 보호 문제에 발목을 잡혔다.
원격의료는 의사들의 반발에 10년째 시범사업만 하고 있다. 정부가 이런 규제를 단칼에 끊을 수 있을까. 규제개혁은 더 광범위하게, 더 빠르고 과감하게 해야 한다. 적당히 하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