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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中 끈질긴 사드 보복, 韓 물렁한 대응

WTO 제소 카드 지레 접어
기업 죽을 맛…당당히 맞서야

청와대는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지 않기로 했다. 박수현 대변인은 14일 브리핑에서 "지금은 북핵과 미사일 도발 등으로 중국과의 협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에 대한 국내 언론의 지나친 관심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드 보복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좋게 보면 신중하다. 사실 북핵 난제를 풀려면 중국 측 협조가 필수적이다. 또 WTO에 제소한들 우리가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3일 "(WTO 제소) 카드는 일단 쓰면 카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섣불리 꺼내기보다 품에 지니고 있는 게 낫다는 얘기다. 정부 논리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김 부총리와 이 한은 총재의 당부도 마찬가지다. 한.중 두 나라는 현재 3600억위안, 우리돈 62조원 규모의 통화교환 협정을 맺고 있다. 위안화와 원화를 맞바꾸는 구조다. 이 돈은 외환위기와 같은 비상사태 때 특히 우리가 요긴하게 쓸 수 있다. 국내 언론이 관심을 보일수록 우리가 협정 연장에 매달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한테 되레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각을 달리하면 정부 대응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사드보복에 눈감은 결과를 보라. 이마트에 이어 롯데마트도 중국에서 철수를 결정했다. 현대·기아차의 중국 내 판매는 반토막이 났다. 한국관광을 막는 금한령 탓에 면세점들은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기업들은 죽을 맛인데 정부는 제 할 일을 미루고 있다.

WTO 제소는 정경분리 원칙에 따른 정당한 대응이다. 이번에 정식으로 제소 절차를 밟지 않으면 앞으로도 중국은 한국을 얕잡아 볼 공산이 크다. 제2, 제3의 보복을 막기 위해서라도 WTO 카드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건드리면 문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통화스와프 연장 협상도 우리가 꿀릴 게 없다. 애당초 중국은 통화스와프를 위안화 국제화의 일환으로 여러 나라와 추진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면서 세계 12위 경제국인 한국은 이미 위안화 국제화에 크게 기여했다. 통화스와프 협정이 깨지면 중국도 잃을 게 많다. 그 대신 우리는 한.일, 한.미 통화스와프를 추진하면 된다.


정부는 사드 보복에 좀 더 당당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물론 안보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경제를 마냥 희생양 삼을 순 없다. 우리가 물렁하게 나올수록 보복 강도만 더 세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