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윤중로]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타락한 민주주의

[윤중로]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타락한 민주주의

BC 399년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한 감옥에서 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인류 역사상 4대 현인으로 추앙받는 소크라테스의 죄목은 그리스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지정한 신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모든 진리의 기초를 '도덕'에 두고 정의를 설파했던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에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던 30명의 과두정치 체제하에서 좋은 정치적 사냥감이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정에 올랐다.소크라테스는 형량을 구걸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믿음으로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한 시민들과 재판정을 꾸짖으며 정의를 설파한 끝에 결국 사형을 선고받았다. 권력과 금권에 휘둘린 500명의 시민 배심원들이 철저하게 사익에 휘둘려 판결한 결과였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위대한 철학자인 플라톤은 이를 '중우정치'에 의한 최악의 살인으로 정의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한 정치 형태를 탄생시킨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중우정치(mobocracy)에 무너졌다. 민주주의와 중우정치는 서로 극과 극의 형태로 인식되지만 실제로는 어깨가 서로 맞닿아 있다. 민주주의가 '타락'하게 되면 한순간에 어리석은 군중에 휘둘리는 중우정치가 되기 때문이다. 타락이라 함은 그저 자신의 이익을 차지하기 위해 다수의 지위를 이용하거나, 다수의 결정권자들이 분노 혹은 슬픔에 휩싸여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거나, 노련한 일부 선동가에 의한 집단지성이 마비되는 등의 부작용으로 일어난다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정의했다.

실제 아테네는 시민권을 가진 남성들이 선거권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직접 민주주의였다. 이 때문에 '아고라'라고 하는 광장에서는 늘상 지배자와 시민들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선전전을 일삼았다. 아고라에 사람이 많아질수록, 표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시민들의 세금은 갈수록 늘어갔다. 표를 얻기 위한 선전전은 오늘날의 포퓰리즘이다. 심지어 군사비마저 복지에 쓸 정도였던 아테네는 결국 마케도니아의 침공에 힘도 못써보고 항복했다. "민주주의의 최대 적은 (민주주의를 가장한)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온 이유다.

2000여년 전 플라톤은 아테네의 몰락을 보며 중우정치의 폐해에 대해 네가지로 정의했다. 첫째, 대중적인 인기에 집중하고 그 요구에 무조건 부응하는 사회적 병리현상. 둘째, 개인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기여도 등을 고려하지 않는 그릇된 평등관. 셋째 개인이 절제와 시민적 덕목을 경시하고 무절제와 방종으로 치닫는 현상. 넷째, 엘리트주의를 부정하고 다중의 정치로 흘러가는 것이다.

요즘 우리 대한민국은 안팎으로 너무 시끄럽다. 밖으로는 북한이 연일 핵무기와 미사일로 전세계를 위협하며 전쟁 발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무역질서도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나라안은 더 시끄럽다. 사드배치, 탈원전, 무상복지 확대, 산업계 경제민주화 등 온갖 이슈가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우리사회가 플라톤이 정의한 이 네가지와 몇개가 맞아 떨어지는지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건설부동산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