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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양대지침 폐기, 노동개혁 물거품 안 된다

국가등급 올린 신평사들 이제는 거꾸로 경고 내놔

고용노동부가 25일 이른바 양대 지침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김영주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전국 기관장 회의에서 이같이 결정했다. 두 지침은 정부가 내린 행정명령이다. 따라서 따로 법을 고칠 필요 없이 장관이 결정하면 끝이다. 앞서 문재인정부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을 철회했다. 이로써 박근혜정부가 힘을 쏟은 노동개혁은 죄다 물거품이 됐다.

양대지침은 그 자체로 문제가 없지 않다. '공정인사 지침'은 일을 못하는 직원을 더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했다. '취업규칙 해석과 운영 지침'은 노동자에 불리한 근로조건이라도 회사가 사회 통념상 합리성만 있으면 노조.노동자 동의 없이 도입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 두 지침은 노사관계의 핵심을 규정한다. 고용노동부 지침으로 가볍게 처리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박근혜정부라고 사안의 중대성을 몰랐던 게 아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개정이 벽에 부닥쳤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철벽을 쌓았다. 어쩔 수 없이 박근혜정부는 고용노동부 지침을 개정하는 고육책을 썼다. 거기서 부작용이 생겼다. 2016년 초 양대 지침을 도입하자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에서 탈퇴했다. 지난 5월엔 법원이 노조 동의 없이 취업규칙을 바꿔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뒤 양대 지침 폐기는 시간문제로 여겨졌다. 문 대통령은 대선 때 폐기를 공약했고, 지난 7월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폐기를 공언했다. 김영주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이를 약속했다. 법률 개정이 아닌, 행정명령에 의존한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문제는 앞으로다. 문재인정부는 성과연봉제에 이어 양대 지침까지 원점으로 돌렸다. 노사정위원장엔 민노총 출신을 앉혔다. 국회 환경노동위 위원장을 지낸 김영주 장관은 친노동계 성향으로 분류된다. 현 정부에서 노동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정부 노동개혁에 흠이 있다고 방향이 틀린 것은 아니다. 지난해 가을 한국을 찾은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박근혜정부 때 국가신용등급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올렸다.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구조개혁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는 그 방향과 정확히 거꾸로 간다. 고통을 나누자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오로지 "더 주겠다"는 말만 한다.
벌써 신용평가사들은 새 정부의 노동개혁 없는 일자리 정책에 의구심을 보인다. 노동 경직성은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주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노동개혁이 여기서 이렇게 그쳐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