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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기자의 반려견 입문기] 사십 넘도록 동물 안 좋아했는데 수로에서 건진 '토치'와 인연 맺어

['아재'기자의 반려견 입문기] 사십 넘도록 동물 안 좋아했는데 수로에서 건진 '토치'와 인연 맺어

"어떻게 된 것 아니야?" 내가 강아지를 키우게 됐다는 소식을 들은 동생의 첫 반응이었다. 사실 내가 생각해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다.

솔직히 말해 나는 동물을 싫어했다. 누구나 한 가지쯤은 갖고 있을 '어릴 적 트라우마' 때문이다. 어머니 말씀을 빌리자면 서너살쯤에 집 앞 골목길에서 이웃집 개한테 거의 물릴 뻔 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40대 후반이 되도록 나는 동물과는 거리가 있었다. 키우는 것은 고사하고 길거리를 가다가도 개나 고양이가 오면 슬슬 피하기 일쑤였다. 내일모레 50줄을 바라보는 중년남자가 겨우 개나 고양이를 무서워 한다는 것이 우습게 들릴 줄 모르지만 사실이다. 몇 년 전 경기도 가평의 전원주택 단지로 이사한 뒤에 주변 지인들이 '개 한 마리 키우라'고 권유하곤 했지만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그랬던 내가 강아지를 키우겠다고 했으니 주변 사람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사실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지금도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은 안했을지도 모른다.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은 지난 6월초 어느 날 오후였다. 집 뒤 쪽에서 끙끙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한 시간 가까이 그치질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끙끙대는 소리는 거의 야생동물의 울음소리와 비슷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뉘집 개가 조용하고 평화로운 주말 오후시간을 방해하나 싶어 짜증이 났다. 잔뜩 이마를 찌푸리고 뒤뜰로 들어섰을 때 농수로에 빠진 작은 강아지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태어난 지 한달이나 됐을까? 그 작은 녀석이 농수로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려서는 물살에 휩쓸려 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수심은 10cm 정도로 깊은 것은 아니지만 각각 1m 정도의 폭과 깊이를 가진 농수로의 규모나 물살의 세기로 볼 때 사람이 건져주지 않으면 떠내려갈 것이 분명했다.

한 시간 넘게 끙끙대는 소리를 냈던 것은 녀석의 어미였다. 그러니까 제깐에는 새끼를 구해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다.그렇게 나는 녀석의 '생명의 은인'이 됐다. 고백하건대 내가 동물을 안아본 건 그때가 처음이다. 그냥 대충 손으로 건져내려고도 했지만 바둥거리는 녀석과 생각보다 거센 물살 때문에 품에 안지 않으면 건져낼 수 없었다.

그전까지는 동물을 만지는 것도 질색하는 나였지만 생각보다 '첫 경험'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은 우리 집에 살게 됐다.현재 그 녀석은 '토치'라는 이름으로 우리 집 거실을 차지한 채 살고 있다. 아직 생후 4개월밖에 안된 조그만 녀석이지만 존재감 하나는 확실하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제일 먼저 달려 나오는 것도 토치다. 강아지 주제에 마치 토끼나 되는 것처럼 깡총거리며 달려온다고 해서 '토치'라고 이름지었다. 요즘 신조어 가운데 '개아들' '개딸'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반려견이 마치 자식처럼 느껴진다는 의미란다.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그새 나도 토치가 늦둥이 막내 딸처럼 느껴진다. 나한테도 '개딸'이 생긴 모양이다.

ohngbear@fnnews.com 장용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