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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이제 배 짓는 곳까지 정치가 간섭하나

구조조정에 훼방만 될 뿐 현대重 경영진에 맡겨야

현대중공업이 최근 수주한 선박 10척을 가동중단 상태인 전북 군산조선소에서 건조하라는 민원이 전북 출신 정치인들 중심으로 빗발치고 있다고 한다. 오랜 수주절벽으로 인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기업에 지나친 요구가 아닐 수 없다.

전북지역 정치인들은 최근 현대중공업이 해운사 폴라리스쉬핑에서 수주한 9000억원 규모의 광물운반선(VLCC) 10척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로 배정해달라며 청와대, 정부 측과 접촉하고 있다. 지난 26일 전북도의회 박재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청와대를 방문, 임종석 비서실장과 면담했으며 지난 25일에는 국민의당 정동영, 조배숙, 김관영 등 전북 출신 의원 5명이 군산조선소 재가동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관영 의원은 군산조선소 재가동 여부를 따지기 위해 현대중공업 대주주 정몽준 전 의원 등을 국감 증인으로 신청했다.

지역 정치인들의 심경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지난 7월 군산조선소의 잠정폐쇄로 4500여명이 일자리를 잃었고, 군산 경제는 동력을 잃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은 군산조선소만의 일이 아니다. 울산 본사에서도 일감 부족으로 독(dock) 2개가 가동중단됐으며 5000여명의 유휴인력을 순환휴직 등으로 놀리고 있다. 회사는 일단 신규 선박을 울산에서 건조할 계획이다.

군산조선소를 재가동하려면 연간 12척씩 3년간 적어도 36척의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래야 현대중공업과 협력업체가 인력과 비용 등을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랑 10척을 짓자고 조선소를 재가동하면 훗날 재중단이 불가피하고 엄청난 손실을 부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그리고 일감을 군산으로 옮기면 울산지역이 가만 두고 볼 리가 없다. 전북 정치인들의 행보에 울산시와 울산 동구가 반발하는 등 지역갈등이 가열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가 기업 구조조정에 끼어들면 되는 일이 없다. 2000년대 초반 한진중공업 사태나 2009년 쌍용자동차 사태가 대표적인 예다. 정치권이 온갖 요구를 내놓으며 경영에 간섭하면서 회사의 정상화가 늦어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선박 10척을 수주했다고 해서 현대중공업의 경영난이 해소된 것이 아니다. 조선 업황이 계속 좋아지리란 보장도 없다. 정치권이 억지 요구를 거둬들이는 것이 현대중공업 정상화를 돕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