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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국민연금 600조, 운용전략 새로 짤 때다

정치는 집적댈 생각 버리고 전문가 집단에 재량권 줘야

국민연금 적립금이 7월 말 기준 600조원을 넘어섰다. 세계 3위 연기금답다. 주식시장 호황 덕에 올해 수익률은 5%대 중반으로 높아졌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2167만명(6월 말 기준)에 이른다. 연금을 타서 생활에 보태는 이들도 428만명이다. 국민연금은 최근 몇몇 구설에 휘말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는 보루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국민연금을 흔히 '연못 속 고래'로 부른다. 덩치에 비해 돈을 굴릴 국내 시장이 워낙 작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채권.주식 투자가 70%에 이른다. 해외주식과 채권, 대체투자 비중을 점차 높이고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해외에서 더 높은 수익을 올리려면 투자전문가 집단인 기금운용본부에 더 큰 재량권을 줘야 한다. 그래야 연금이 바닥을 드러내는 시기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 국민연금은 2060년께 고갈될 것으로 전망된다.

적립금이 600조원을 넘어선 지금이 향후 운용전략을 새로 짤 기회다. 100조원을 굴릴 때 전략과 600조원을 굴릴 때 전략은 달라야 한다. 무엇보다 기금운용위원회를 독립시키고, 그 아래 기금운용공사를 설치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사실 이 아이디어는 10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냈다. 노 대통령은 기금운용위를 복지부에서 분리한 뒤 위원장은 민간에 맡기려 했다. 위원 자격은 금융.투자 전문가로 국한했다.

현재 기금운용위는 위원장(복지부 장관)을 포함한 당연직 6명, 사용자 대표 3명, 근로자 대표 3명, 지역가입자 대표 6명, 전문가 2명 등 총 20명으로 구성돼 있다. 국민연금의 공공성을 충실히 반영한 결과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이나 노조, 농수협, 외식업, 소비자단체 관계자들이 과연 해외 주식.대체투자 전략을 짜는 데 적당한 구성원인지는 의문이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기금운용본부장 자리는 몇 달째 공석이다. 전 이사장은 감옥에 갇혔고, 전 본부장은 자진사퇴했다.
지금이야말로 국민연금이 거듭날 수 있는 기회다. 정치에서는 일절 손을 떼고 투자 포트폴리오, 의결권 행사 등 모든 운용전략을 전문가집단에 맡겨야 한다. 이번에도 자기 사람 앉히고, 정치가 집적대는 버릇을 못 버리면 국민연금의 앞날은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