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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탈원전에 눈 멀어 해외 수주 외면하나

개최국이 '원전 올림픽' 쉬쉬.. 원전산업 황폐화될까 걱정

국내 원자력산업 인프라 전체가 부실해질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탈원전에 무게 중심이 실리면서다. 신고리 5.6호기 원전의 운명을 결정할 시민참여단의 주말 2박3일 종합토론회와 최종 조사에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16일 경주에서 열릴 세계원전사업자협회(WANO) 총회는 개막하기도 전에 이미 파리를 날리는 분위기다. '원전 올림픽'이라고 불릴 만큼 큰 행사지만 개최국에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마저 외면하는 터라 '흥행'인들 될 리가 없다.

이는 진작에 예상됐던 결과다. 이번 총회에는 세계 원전 운영사의 최고경영자(CEO) 등 관계자 500명 이상이 참석한다. 우리 원전 수출 길을 틀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정부는 그 흔한 홍보자료 하나 내지 않았지 않은가. 원전 운영사들로 구성된 총회에 장차관이 참석하지 않는 게 관례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애써 발을 뺄 핑계를 찾는 느낌이다. 그러지 않아도 행여 탈원전 공론화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릴까봐 원전산업 진흥에는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프로젝트 최고 책임자 면담에 4급 서기관을 보낸 게 단적인 사례다.

우리나라를 찾은 원전 발주국들을 대놓고 냉대하는 모습은 더 걱정스럽다. 2040년까지 원전 4기를 새로 짓는 체코는 10~14일 얀 슈털러 특사를 한국에 파견했다. 그는 "한국 원전의 안전성에 감명을 받았다"고 국내 원전을 둘러본 소감을 밝혔다. 그러나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도 모자랄 판인데 산자부 고위 관계자들은 그를 접견조차 않았다. 오죽하면 제3자인 마이클 셸렌버거 미국 환경진보 대표가 "케냐가 한국에 원전을 발주하려다 러시아로 돌아섰고, 한국의 수주를 염두에 뒀던 영국도 재고하고 있다"고 제보했겠나. 세계적 환경운동가인 그도 안전성에서 세계 최고급인 한국 원전이 세계시장에서 중.러 원전으로 대체될 상황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우리는 탈원전 분위기에 취해 원전산업 생태계를 황폐화시켜서는 곤란하다고 본다. 설령 국내 원전을 점차 줄여나가는 큰 방향에는 동의하더라도 그렇다. 해외로 원전을 수출할 기회마저 스스로 걷어찬다면 부품 등 원전 연관 산업 전체가 뿌리째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자칫 원전 부품마저 중국에 의존할 경우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성마저 위협받게 된다.
가뜩이나 원전의 대체 발전용 연료인 액화천연가스(LNG)를 전량 수입하는 우리로선 에너지 안보에 치명적인 구멍이 생기는 셈이다. 이는 그야말로 게도 놓치고 구럭도 잃는 최악의 사태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와 별개로 원전 수출은 지원하겠다는 애초 정부의 약속이 허언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