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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신고리 공론화 이후의 혼란을 우려한다

찬성·반대파 승복 안 할 것.. 낡은 원전부터 폐쇄가 정답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가 지난 주말 마무리됐다. 공론화위원회는 20일 결과를 발표한다. 지난 7월 출범한 공론화위는 국무총리 훈령에 따른 3개월 한시기구다. 권고안을 제출한 뒤 해산한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24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5.6호기 건설을 중단할지 재개할지 결론을 낸다.

문제는 그 이후다.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든 승복이 쉽지 않아 보인다. 공사 재개 결정이 나면 탈원전파가 들고일어날 게 뻔하다. 공사 중단 결정이 나면 원전 찬성파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24일 국무회의는 갈등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충돌의 시작이 될 우려가 크다. 정부는 숙의민주주의 카드로 돌파구를 노렸다.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는 절차를 밟았다. 지난 주말 시민참여단은 2박3일 합숙까지 했다. 그러나 공론화를 둘러싼 뿌리 깊은 갈등이 풀린 것은 아니다.

그 단초는 정부가 제공했다. 시계추를 돌려보자.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식에서 "탈핵시대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신고리 5.6호기는 빠른 시일 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와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은 뒤늦게 호들갑을 떨었다. 한수원은 노조 몰래 '도둑' 이사회를 열어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단 결정(7월 14일)을 내렸다. 사흘 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 운영 및 구성에 관한 총리훈령을 관보에 실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공론화위가 출범(7월 24일)했다.

일련의 과정에서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다. 하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미 대통령이 탈핵시대를 선언했다.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신재생에너지 전문가다. 아니나 다를까, 15일 청와대 관계자는 공론화위가 어떤 결론을 내든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지속할 것이란 뜻을 밝혔다. 이러니 원전 찬성파의 눈에는 공론화 과정이 요식행위로 비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왜 이렇게 성급하게 구느냐는 것이다. 흔히 에너지 백년대계라고 한다. 전기는 산업의 쌀과 같은 존재다. 5년 임기 정부가 방향을 휙 틀 일이 아니다. 원전 의존도를 낮추고 싶다면 장기 국정과제로 에너지 로드맵부터 마련하는 게 순서다. 그래야 원전을 줄여도 전기료가 오르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하지만 정부는 순서를 거꾸로 밟았다.

정부가 공정률 30%에 이른 신고리 5.6기를 탈원전 시금석으로 고른 것은 패착이다.
신기술이 적용된, 따라서 안전도가 뛰어난 새 원전은 짓게 놔두고 대신 오래된 원전부터 차례대로 문을 닫는 게 합리적이다. 공론화위는 예산 46억원을 썼다. 이 돈은 헛돈이 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