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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행정해석 통한 근로시간 단축은 편법

양대지침 사례가 반면교사.. 시간 걸려도 법개정이 정석

문재인 대통령이 근로시간 단축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1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어렵다고 판단되면 행정해석을 바로잡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행정해석은 정부가 쉽게 바꿀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편법이다. 물도 급히 들이켜면 체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회에서 근로기준법을 바꾸는 게 정석이다.

문 대통령의 초조한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몇 년째 국회에 발목을 잡혀 있다. 박근혜정부도 비슷한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주당 법정 근로시간은 40시간이다. 월~금요일 닷새간 하루 8시간씩 일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았다. 연장근로는 12시간까지 허용한다. 둘을 합치면 52시간이다. 그러나 실제론 주당 6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여기서 행정해석이 등장한다. 정부는 '일주일에 토.일요일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라 토.일요일에 8시간씩, 총 16시간을 더 일할 수 있다.

한국은 세상에서 가장 길게 일하는 나라로 꼽힌다. 오죽하면 선거 때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하겠다'는 공약이 나올까. 문 대통령이 지적한 '과로사회'는 분명 문제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런데 왜 국회에선 관련법이 통과가 안 되는 걸까. 고질적인 갈등이 있다.

근로시간이 줄면 임금도 주는 게 원칙이다. 노조는 이를 거부한다. 지금 하루 10시간 일하면서 월 300만원을 받고 있다면, 앞으로 8시간을 일해도 300만원을 달라는 것이다. 어느 기업도 수용하기 힘든 요구다. 이래선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 없다. 특히 형편이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죽을 맛이다. 유예기간을 둔다 해도 결국은 인건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않을까 전전긍긍이다. 이 갈등이 풀리지 않는 한 근로기준법 개정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행정해석에 손을 대는 건 더 나쁜 선택이다. 근로시간은 중대한 노동정책이다. 행정부 재량에 섣불리 맡길 일이 아니다. 박근혜정부가 반면교사다. 지난해 초 고용노동부는 양대 지침을 바꿔서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이를 손바닥 뒤집듯 폐기했다. 지침이나 행정해석은 정권이 바뀌면 언제 뒤바뀔지 모르는 신세다.

2년 전 일도 떠올릴 필요가 있다. 2015년 시행령 파문이 있었다.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은 정부가 법률에 어긋나는 하위 시행령을 함부로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에 찬성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바람에 법제화엔 실패했지만, 법의 정신만은 옳았다. 행정해석을 편법의 수단으로 삼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