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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졸속 탈원전에 제동 건 성숙한 시민들

신고리 ‘평지풍파’ 일단락.. 감성 아닌 과학으로 판단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20일 건설 재개 결정을 내렸다. 공론조사 결과 건설 재개가 59.5%, 건설 중단이 40.5%로 나왔다. 울산 울주군에 들어설 신고리 5.6호기는 석달 전 느닷없이 공사를 멈췄다. 새로 출범한 문재인정부가 공사를 지속할지 여부를 공론에 부친다는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5.6호기는 공정률이 30%에 이른다. 이미 들어간 공사비만도 1조6000억원이나 된다. 누가 봐도 5.6호기는 그대로 짓게 놔두는 게 순리다. 그런데도 정부는 대통령 공약이라는 틀에 갇혀 그릇된 판단을 내렸다. 공론화위 시민참여단이 섣부른 정부 결정에 제동을 건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정부는 공론화위 권고와 탈원전 정책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에도 불구하고 탈원전 정책은 이어갈 것이란 얘기다. 공론화위도 장차 원전 축소를 원하는 비율이 5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사실 이는 새로울 게 없다. 장기적으로 원전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데는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졌다. 문제는 각론이다. 이에 대해 시민참여단은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성급하게 굴다간 자칫 전기료가 뛰는 것은 물론 산업 경쟁력까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원론으로 돌아가면 답이 보인다. 한국은 자원빈국이다. 주요 산업국 가운데 수입에너지 의존도가 가장 높다. 40년 전 당시 박정희정부는 원전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값싸고 질 좋은 전력은 고도성장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됐다. 더불어 원전 기술력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라섰다. 국제 원자력 시장에서 한국은 메이저급 대우를 받는다. 이 소중한 자산을 우리 스스로 허물 이유가 없다. 안전이 문제라면 더 확실한 안전 기술력을 개발하면 된다. 시민참여단은 원전을 감성이 아니라 과학으로 접근했다. 정부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한다.

야당은 일제히 문 대통령과 정부에 사과를 요구했다. 괜한 소동으로 사회적 갈등만 부추겼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공사 중단으로 건설업체들에 물어줘야 할 보상금이 1000억원에 이른다는 추산도 있다.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은 그야말로 생돈 날리게 생겼다. 누군가는 그 책임을 져야 한다.

한가지 소득도 있다. 아무리 대통령 공약이라도 무작정 밀어붙이면 안 된다는 교훈이다. 당락이 걸린 선거판에선 설익은 공약이 난무한다.
하지만 집권한 뒤엔 달라져야 한다. 전후좌우 살펴가며 정책을 가다듬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최저임금제,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정책을 공론화에 부쳤다면 어떤 결론이 나왔을까. 과연 모자라는 돈을 정부가 메워주는 식의 시급 1만원 정책이 공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세금으로 공무원을 늘리는 정책에 시민참여단이 선뜻 손을 들어줬을까. 문재인정부가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