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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원전은 악' 편견 못버린 탈원전 로드맵

수명 연장 금지는 비합리적.. 여전히 과학보다 감정 앞서

정부가 24일 국무회의에서 탈원전 로드맵을 의결했다. 신규 원전은 일절 짓지 않고, 노후 원전은 수명연장을 금지한다. 또 경주 월성 1호기는 전력수급 안정 등을 고려해 조기 폐쇄하기로 했다. 이로써 탈원전 논란은 2라운드를 맞았다. 1라운드에선 신고리 5.6호기를 계속 지을지 말지를 놓고 원전 찬성파와 반대파가 붙었다. 공론화위원회는 찬성파의 손을 들어줬다. 과학이 감성을 이겼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정부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와 탈원전 정책은 별개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 결과물이 탈원전 로드맵이다.

에너지는 백년대계다. 5년 임기 정부가 섣불리 뒤집을 일이 아니다. 풍부한 전력, 값싼 전기료는 지난 반세기 우리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끈 밑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문재인정부에 신중한 접근을 당부해 왔다. 그러나 이날 나온 로드맵을 보면 정부가 이념적.감정적 탈원전 도그마에 갇힌 나머지 성급하게 군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미 계획이 잡힌 신규 원전 6기 건설을 다 포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신한울 3.4호기는 설계용역까지 진행했고, 천지 1.2호기는 일부 땅을 매입했다. 또 다른 신규 원전 2기도 청사진에 들어 있다. 6기 건설은 장기 에너지 수급 전망에 따른 것이다. 이를 대체할 신재생에너지를 확보하기도 전에 불쑥 원전부터 포기하면 안 된다. 더구나 새 원전은 안전성이 가장 높다. 안전이 그렇게 걱정이라면 오히려 새 원전을 짓는 게 낫다.

수명연장을 획일적으로 금지한 것도 어리석다. 해외 사례를 보면 설계수명이 끝나도 유지.보수만 잘하면 30년 수명 원전도 40~50년 운영하는 게 보통이다. 월성 1호기는 오랜 논란 끝에 10년 수명이 연장돼 오는 2022년 재만료된다. 안전에 문제가 없다면 그 뒤에도 쓰지 말란 법이 없다. 줄줄이 만료를 앞둔 다른 원전도 알뜰하게 사용한 뒤 명예 퇴역시키는 게 합리적이다.

정부가 매몰비용을 가볍게 대하는 태도도 못마땅하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석달 중단한 대가로 물어줘야 할 돈이 약 1000억원에 이른다.
신규 원전 6기를 다 취소하면 또 수천억원 매몰비용이 발생한다. 1조원이 넘는다는 야당 의원 주장도 있다. 묵과할 수 없는 예산낭비다. 그 책임을 누가 질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