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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비정규직 제로' 두고두고 짐 된다

톨게이트 자동화 코앞인데 수납원 수천명 정규직 채용

문재인 대통령의 '비정규직 제로' 선언을 실현하기 위한 로드맵이 나왔다. 고용노동부는 25일 853개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41만여명 중 올해 7만4000명을 시작으로 2020년까지 총 20만5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상시.지속적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31만명 가운데 64.9%가 정규직 신분으로 바뀌는 것이다. 지난 7월 발표 때보다 정규직 전환 대상을 줄이고 속도도 늦췄다.

물론 같은 일을 하면서 임금과 처우에서 차별받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면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밖에 없다. 한국도로공사의 경우가 그렇다. 도로공사는 7600여명의 톨게이트 요금 수납원 등을 정규직으로 바꿔야 할 처지에 놓였다. 문제는 3년 뒤면 하이패스 확대로 이들의 업무가 사라지는데도 도로공사가 고용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천공항공사 외주사들은 계약해지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60세 정년 적용을 받아 실직 위기에 몰린 서울대 고령 비정규직들은 오히려 정규직화를 반대한다.

임금 부담이 늘어나 공공기관이 부실화하는 것도 문제다. 공공기관은 대개 독점기업으로 생산성이 떨어진다. 경쟁을 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임금에 정년까지 보장받기 때문이다. 공공기관 세 곳 가운데 두 곳꼴로 영업이익이 적자인 이유다. 손실이 커지면 결국 세금으로 메울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마저 폐지하기로 한 마당에 철밥통을 양산해 두고두고 재정에 짐이 될까 우려된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앞서 경영개선책을 내놓는 게 먼저다.

이번 대책에는 가장 중요한 재원대책이 빠져 졸속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정규직 전환에 따른 소요재원이 얼마인지, 또 이를 뒷받침할 예산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정부는 재정 부담은 그리 크지 않다고 하지만 짧은 생각이다. 처우개선을 마냥 미루기는 어려울 게다. 정규직으로 바뀌는 노동자에 대한 처우가 기존 정규직보다 크게 떨어지면 무기계약직을 양산했다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재정이 뒷받침되지 않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노사갈등, 노노갈등은 물론 경영부실만 초래할 뿐이다. 일자리를 줄이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더디 가도 제대로 가는 방안을 찾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