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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낙하산' 놔두고 채용비리 근절될까

윗물 맑아야 아랫물도 맑아.. 정부·정치권이 모범 보여야

정부가 공공기관 채용 비리에 채찍을 들었다. 중앙.지방 공공기관 1100곳을 대상으로 5년치 채용실태를 이 잡듯이 뒤진다. 비리 연루자는 중징계하고, 비리로 채용된 자는 퇴출시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수조사를 해서라도 채용비리의 진상을 철저하게 규명해 달라"고 당부했다. 27일 정부는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주재한 관계장관 긴급 간담회에서 채용비리 특별대책본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대검찰청 반부패부가 수사를 지휘한다.

누가 봐도 잘하는 일이다. 요즘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좌절한다. 이런 마당에 누군가 '빽'으로 취직한다면 경쟁자들이 느낄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모든 취업준비생이 선망하는 공기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 채용비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반칙과 특권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채용비리는 공정성을 훼손한다. 공정성이 무너지면 사회 기초가 흔들린다. 엄벌은 당연하다.

이미 검찰은 수사에 착수했다.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된 금융감독원은 두 차례 압수수색을 당했다. 현역 국회의원 이름이 오르내리는 강원랜드를 비롯한 여러 공기업도 도마에 올랐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지적을 받은 우리은행은 자체 감찰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우리은행을 포함해 금융권 전반에 대한 현장점검에 나설 태세다.

다만 힘껏 박수를 치면서도 한편으로 떨떠름한 게 있다. 문 대통령의 당부와 정부 대책에서 고위급 '낙하산'에 대한 언급이 빠졌기 때문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건 상식이다. 아래 흙탕물을 깨끗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윗물 정화다.

정권이 바뀌면 정부 산하 공기업 이사장.사장.감사도 패키지로 바뀌는 게 보통이다. 이때 관료 낙하산도 문제, 정치인 낙하산도 문제다. 관료가 가면 마치 제 식구인 양 공기업을 감싸고 돈다. 그래야 또 후임 관료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공기업을 혁파하려는 노력은 소홀하다. 정치인 낙하산 경영자는 인사청탁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기를 앉힌 세력에 신세를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낙하산 척결 없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척결은 반쪽짜리다. 진정성이 있으려면 대책이 양쪽에서 나와야 한다.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 채용비리가 어쩌다 발생하는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일상화된 비리가 아닌지 의심될 정도"라고 말했다. 고액연봉을 보장받는 고위급 낙하산은 일상화된 반칙이다.
진보.보수 정권을 가리지 않는 고질병이다. 엄밀히 말하면 직원 채용비리(아랫물)보다 낙하산(윗물)부터 바로잡는 게 순서다. 비록 늦었지만 특단의 낙하산 척결대책이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