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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재벌개혁에도 '넛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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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조 "개혁 의지 의구심" 경영권 승계 '당근'도 필요

정부가 재벌개혁에 속도를 낼 것 같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일 5대 그룹 경영진을 만나 "기업들의 자발적인 개혁 의지에 대해 의구심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재벌 공익재단을 전수 조사하고, 지주사 수익구조 실태를 점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재벌개혁에 신중하던 김 위원장의 '강공'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하루 전인 1일 문 대통령은 "재벌대기업 중심 경제는 더 이상 우리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의 입장을 이해한다. 그는 6월 취임식 기자간담회에서 "4대 그룹을 찍어서 몰아치듯이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곤 4대 그룹 경영진을 만나 자율개혁을 요청했다. 그 뒤 한 언론과 인터뷰에선 "올 12월 말을 제 인내심의 1차 데드라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시한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김 위원장으로선 '실적'에 대한 초조감을 느낄 만하다.

정부가 자율시한을 준 만큼 재계도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좋겠다. 이왕 바꿀 거면 김 위원장이 있을 때 바꾸는 게 좋다. 그는 대기업 사정에 정통하다. 엉뚱한 사람이 위원장으로 와서 마구 밀어붙이는 것보다 백배 낫다. 재벌개혁은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다. 적당히 시간을 벌며 두루뭉술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다만 김 위원장과 정부에 당부한다. 반세기 이상 굳어진 재벌 체제를 손바닥 뒤집듯 바꿀 순 없다. 시한을 정해놓고 다그치기보다는 기업에 좀 더 여유를 주기 바란다. 채찍만 들지 말고 당근도 같이 보여주면 더 좋다. 재벌은 자나깨나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가 걱정이다. 경영권 승계에도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부와 재계의 빅딜 필요성을 제기한다. 경영권과 투자.일자리를 맞바꾸자는 것이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은 '넛지' 전략을 제시한 리처드 탈러 교수에게 돌아갔다. 넛지는 타인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말한다. 재벌을 악으로 보는 도식적인 시각만 버리면 빅딜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재벌.오너 체제가 다 나쁜 것도 아니다. 삼성전자를 보라. 오너 체제이지만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손색이 없다. 장기투자전략을 세우고 신속한 결정을 내릴 땐 오너가 있는 게 유리하다. 반면 전문경영인들은 단기실적에 집착한다. 재벌정책은 시대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오너 지분을 줄이라고 해서 줄였더니 소수 지분으로 황제경영을 한다고 비판한다.
한때는 지주사가 경영권 승계 수단으로 악용된다고 막더니 이젠 지주사로 바꾸라고 재촉한다. 지주사 제도는 시대 흐름을 반영한 정책 수단일 뿐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기업 지배구조엔 정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