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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돈 쓸 생각말고 벤처규제부터 풀라

"관료화된 공무원 조직이 스타트업 육성의 걸림돌"

정부가 제2의 창업 붐 조성을 위한 벤처지원 대책을 내놨다. 2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다. 핵심은 정부 주도의 창업 방식에서 벗어나 민간이 선정한 유망기업을 세계적으로 키운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3년간 10조원 규모의 혁신모험펀드를 조성하고, 스톡옵션 비과세.엔젤투자 소득공제 확대 등을 추진키로 했다.

2000년대 초반 벤처 붐 이후 국내 벤처의 역동성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혁신창업은 줄고, 생계형 창업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실제 창업을 통한 자수성가형 부자 비중을 보면 한국은 18.5%로 미국(32.1%), 일본(63%)에 비해 턱없이 낮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혁신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1호 대책을 내놓은 것은 다행이다. 벤처인증에 정부 간섭을 줄이려는 것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갈 길이 멀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데도 벤처규제는 갈수록 늘어나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 중국이 3000만명의 고객을 확보한 원격진료는 막혀 있고, 드론 하나 마음 놓고 띄울 공간을 찾기 힘들다. 우버.딥마인드 등 세계 100대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이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했다면 13곳은 불법, 44곳은 사업모델을 바꿔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세계 최초로 기술을 개발해도 실험하러 외국으로 가는 처지다. 한국에선 새로운 것은 뭐든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벤처지원보다 규제를 먼저 풀어달라는 호소가 나온다. 그제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4차 산업혁명 문재인정부에 바란다'를 주제로 개최한 토론회에서는 쓴소리가 쏟아졌다. "스타트업 육성에 가장 큰 걸림돌은 공무원 조직의 관료화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유인호 한국인터넷전문가협회 사무총장) "혁신기업 중 사업하자마자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산업계 주장만 듣고 규제를 강화해서다. 국가 발전과 소비자 이익 관점에서 판단기준을 세워야 한다."(김봉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의장)

규제를 놔두고 세금으로 벤처를 지원하는 것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실제 지난 4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금이 좀비기업을 양산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정부가 연말께 추가 규제완화 방안을 내놓는다고 하니 속도를 더 내길 바란다. 규제를 완화하는 데는 세금 한 푼 안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