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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 Leisure] 굽이굽이 걸음걸음마다 솟구치는 ‘강원도의 힘’

가을을 걷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정선~평창~강릉 131.7㎞ 9개 코스로 이어지는 ‘올림픽 아리바우길’.. 평창동계올림픽을 즐기는 또하나의 방법
母情이 쌓아올린 돌탑 길 작은돌에 소원을 담아 살포시 얹어본다
한적해서 좋은 3코스 노추산엔 한 어머니가 가족을 생각하며 25년간 쌓은 돌탑만 3000개
수능철엔 학부모 발길 이어져.. 5코스 명소는 '안반데기'
해발 1100m 드넓은 경작지와 풍력발전기의 '환상적인 조화'

[yes+ Leisure] 굽이굽이 걸음걸음마다 솟구치는 ‘강원도의 힘’
정선5일장에서 백두대간을 넘어 경포해변에 이르는 131.7km의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새롭게 열렸다. 제4코스 안반덕(안반데기)에선 고랭지 채소밭과 풍력발전기가 만들어내는 멋진 풍광과 만날 수 있다. 사진=조용철 기자

[yes+ Leisure] 굽이굽이 걸음걸음마다 솟구치는 ‘강원도의 힘’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8코스 명주군 왕릉 가는 길.

[yes+ Leisure] 굽이굽이 걸음걸음마다 솟구치는 ‘강원도의 힘’
올림픽 아리바우길 제3코스에 있는 모정탑길에는 여행객들이 직접 쌓은 돌탑도 많이 보인다. 사진=조용철 기자

[yes+ Leisure] 굽이굽이 걸음걸음마다 솟구치는 ‘강원도의 힘’
올림픽 아리바우길 이정표

[yes+ Leisure] 굽이굽이 걸음걸음마다 솟구치는 ‘강원도의 힘’
도암댐 전경

[yes+ Leisure] 굽이굽이 걸음걸음마다 솟구치는 ‘강원도의 힘’
고 차순옥 할머니가 쌓은 모정탑

【 강릉(강원)=조용철 기자】 평창동계올림픽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첫 동계올림픽의 의미를 새기고 강원도의 가을 풍광을 한껏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올림픽 아리바우길'이 열렸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올림픽 분위기와 함께 빨강, 주황, 노랑, 연두, 초록빛으로 물든 단풍 속에 빠져들 수 있는 이 길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정한 국내 유일의 트레킹 코스다.

'올림픽 아리바우길'은 올림픽(평창), 아리랑(정선), 바우길(강릉)에서 따온 이름으로 9개 코스, 총 연장 131.7㎞에 달한다. 정선5일장에서 다래뜰을 거쳐 나전역에 이르는 제1코스(17.1㎞)를 비롯해 나전역~구절리역(2코스 20.5㎞), 구절리역~배나드리마을(3코스 12.9㎞), 배나드리마을~안반덕(4코스 14㎞), 안반덕~대관령휴게소(5코스 12.1㎞), 대관령휴게소~보광리 게스트하우스(6코스 14.7㎞), 보광리 게스트하우스~명주군 왕릉(7코스 11.7㎞), 명주군 왕릉~송양초교(8코스 11㎞), 송양초교~경포해변(9코스 17.7㎞) 등 9개 구간으로 구성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강원도는 지자체별로 운영하던 이 길을 정비하고 일부 구간을 새로 연결하면서 전체 코스를 완성했다.

강원도 내륙에서 동해안에 이르는 이 길을 걷다보면 아리랑이 울려퍼지는 정선의 강과 들판을 지나 평창 백두대간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예로부터 산수가 천하제일이라는 강릉의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바우는 강원도 방언으로 '바위'를 가리킨다. 강원도와 강원도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 '감자바우'라고 부르듯 올림픽 아리바우길 또한 강원도 산천답게 자연과 인간 친화적인 트레킹 코스인 셈이다. 이 중 '배나드리마을~바람부리마을~안반덕(안반데기)'으로 이어지는 올림픽 아리바우길 4코스는 평탄한 숲길로 이뤄져 있어 트레킹 초보자라도 14㎞ 전구간을 무리없이 걸으며 완주할 수 있다.

■화전민의 애환이 담긴 안반데기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짓기 위한 재목을 뗏목으로 엮은 뒤 한양으로 보냈다고 해서 지어진 배나드리 마을에 닿으면 백두대간 구간으로 길이 이어진다. 백두대간 구간의 시작은 강릉이다. '솔향의 도시'라는 명칭답게 출발하면서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금강소나무가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 도암댐의 풍경이 펼쳐진다. 지난 1991년 준공한 도암댐은 황병산(1407m)과 매봉(1173m)에서 발원한 물을 가둬 만든 수력발전용 댐이다. 2001년부터 발전을 중단한 이후 인공호로 남아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도암댐을 지나면 '힐링로드'가 여행객을 맞는다. 해발 1100m 고원에 있는 안반데기에선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진다. 이름만큼 풍광도 독특하다. 해발 1100m 고지에 대단위 경작지가 펼쳐진다. 구름이 손에 잡힐 듯하고, 바람은 거세다. 여러 대의 풍력발전기가 이국적인 느낌을 더한다.

아름다운 풍광 뒤에는 돌투성이 비탈길을 맨손으로 일군 역사가 있다. 안반데기는 1965년부터 정부에서 개인에게 채소와 약초를 재배할 수 있도록 개간을 허용하면서 화전민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약 198만㎡(약 60만평)를 개간해 감자와 배추 등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1995년부터는 개인에게 불하해 안정적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했다.

안반데기라는 명칭은 이곳의 지형이 마치 떡메를 치는 안반과 같이 넓적하게 생긴 언덕이라고 해서 '안반덕'이라고 했는데 이후 '안반덕이' '안반데기'로 바뀌었다. 현재는 28가구가 정착해 살고 있으며 전국 최대의 채소 재배단지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안반데기 왼쪽으론 해발 1146m의 옥녀봉이, 오른쪽으로는 해발 1238m의 고루포기산, 노인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등산로가 펼쳐진다. 이 길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8 평창동계올림픽 사업으로 정선5일장을 출발해 평창을 지나 강릉 경포해변에 이르는 131.7㎞ 구간에 포함시켜 트레킹 코스로 개발했다.

멍에전망대에선 안반데기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지난 2010년 화전민의 개척정신과 애환 등 굴곡진 삶을 기리기 위해 강릉시 왕산면주민센터에선 공공근로사업으로 밭갈이 현장에서 나온 돌을 모아서 쌓았다. 그 위에 정자각을 세워 멍에전망대를 만들었다. '멍에'는 밭갈이할 때 소의 어깨에 걸치는 농기구의 일종으로, 트랙터 같은 농기계가 없던 시절 안반데기에선 소를 이용해 밭갈이를 했다.

계곡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마치 돛을 단 배를 밀어낼 정도로 많이 부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바람불이. 이곳은 행정구역상 배나드리 마을과 같은 구역에 속해 있지만 예전부터 4가구 8명의 주민들은 산 하나를 사이로 다른 마을과 떨어져 살았다. 전기마저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강릉 최고의 오지마을 가운데 한 곳이었다. 이에 강릉시에선 지난 2010년 배나드리까지 연결하는 1㎞의 도로를 개설하면서 마을 간 40분 넘게 소요되던 시간을 10분 내로 갈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후 전 구간에 도로를 포장했고 2013년에 한국전력과 협의해 강릉에선 맨 마지막으로 전기가 개통됐다. 현재는 15가구가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며 살고 있다.

■가정의 평안 기원하는 모정탑

노추산은 북적이지 않아 고즈넉한 가을을 만끽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해발 1322m 고지인 노추산은 정선군과 강릉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태백산 줄기에 자리한 노추산은 동쪽 사달산을 비롯해 서쪽 상원산, 남동쪽 덕우산, 북쪽 조고봉 등 사방이 산으로 연결된다. 신라시대 설총과 조선시대 율곡 이이가 이곳에서 학문을 닦아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중국 노나라와 추나라의 기풍이 배어 있다고 해서 노추산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지금도 산 중턱에는 설총과 이이를 모신 사당인 이성대가 있으며 모정탑 입구를 조금 지나면 이이의 구도장원비가 세워져 있다.

노추산은 올림픽 아리바우길 3코스에 속한다. 노추산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모정탑이 있기 때문이다. 이 탑에는 서울에서 강릉으로 시집온 고 차순옥 할머니의 사연이 담겨 있다. 차순옥 할머니는 강릉으로 시집와서 남편과 슬하에 4남매를 두고 살았지만 두 아들을 잃고 남편마저 병들면서 힘든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할머니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돌탑을 3000개 이상 쌓으면 집안의 우환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에 할머니는 적당한 장소를 찾던 중 노추산 자락을 발견하고 작은 움막을 지은 뒤 기거하면서 1986년부터 25년간 3000여개의 돌탑을 쌓은 뒤 2011년 세상을 떠났다. 가족의 평안을 기원하는 지극한 마음과 열정이 만든 기적 같은 일이다.

이후 할머니의 가족사랑에 대한 애절함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면서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왕산면 대기리 마을에선 마을 가꾸기 사업을 통해 힐링 체험장과 돌탑 체험장을 조성하면서 노추산 모정탑길을 만들었다. 모정탑길은 사계절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으나 특히 해마다 이맘때면 자녀들의 수능시험을 앞둔 부모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

모정탑까지 갈 때에는 강릉노추산힐링캠프를 찾는 것이 보다 손쉽다. 캠핑장을 지나면 키 큰 금강소나무 길이 열린다. 곳곳에서 만난 다람쥐는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울창한 숲과 깨끗한 계곡이 이어져 구석구석에서 가을을 느낄 수 있다. 가을을 맞아 낙엽이 뒹구는 오솔길을 지나면 무릎 높이의 돌탑이 줄줄이 보인다. 할머니의 정성에 감복한 이곳 주민들이 쌓아올린 탑과 여행객들이 오가며 쌓은 탑이 어우러지면서 장관을 연출한다.
1㎞ 넘게 걸어가도 어른 키만 한 돌탑 수십기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낸다. 어머니의 애절한 마음이 놀라움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한쪽에는 할머니가 돌탑 쌓을 때 기거한 움막도 있다. 발길을 멈춰 이름 없는 돌탑 위에 돌 하나를 쌓으며 나만의 소원을 두손 모아 빌어보자.

[yes+ Leisure] 굽이굽이 걸음걸음마다 솟구치는 ‘강원도의 힘’

yccho@fnnews.com 조용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