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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이광구 행장 사퇴.. 우리銀 또 관치인가

민영화 1년 공든탑 흔들.. 금융경쟁력 향상은 요원

이광구 우리은행장이 2일 물러날 뜻을 밝혔다. 전 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다. 채용비리가 발목을 잡았다. 이 행장은 "2016년 신입행원 채용 논란과 관련한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했다. 시중은행의 채용비리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실적으로 경영능력을 입증한 행장이 물러날 만큼 중대한 사안인지는 의문이다. 이 행장 사퇴야말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간신히 '국영' 딱지를 뗐다. 2001년 공적자금이 투입된 이래 십수년간 정부은행으로 지냈다. 정부는 여러 차례 민영화를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다 작년 11월 한화생명, 한국투자증권 등 과점주주 7곳에 지분을 넘기는 식으로 부분 민영화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당시 임종룡 금융위원장과 이 행장이 큰 역할을 했다. 더불어 은행 실적도 좋아졌다. 그 덕에 과점주주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들은 올 초 이 행장을 2년 연임시켰다. 오는 13일이 바로 우리은행 민영화 1년이다.

하지만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뒤 정치권은 이 행장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국회 국정감사장에선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인터넷은행 케이뱅크를 둘러싼 의혹도 잇따라 제기됐다. 우리은행은 NH투자증권과 함께 케이뱅크의 주요주주다. 문 대통령은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전수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금융당국은 우리은행 채용비리를 검찰에 고발했다. 전방위 압박에 직면한 이 행장은 결국 자진사퇴의 길을 택했다.

따지고 보면 이 행장 스스로 2014년 취임할 때 친박 구설에 오른 전력이 있다. 그 점에선 원죄가 없지 않다. 하지만 주주들이 외부 간섭 없이 자율로 연임시킨 행장을 이런 식으로 밀어내선 안 된다. 이러다 우리은행이 예전의 '공기업 은행'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이다. 민영화했다곤 하지만 우리은행 최대주주는 여전히 예보(지분율 18.52%)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은행엔 두가지 현안이 있다. 예보 지분을 마저 다 팔고, 지주사 체제로 복귀하는 것이다. 예보 지분을 다 팔아야 진정한 민영화가 이뤄진다. 또 지주사가 돼야 증권.보험사 등을 거느린 진정한 금융그룹으로 거듭날 수 있다. 하지만 이광구 2기 체제가 허무하게 무너지면서 현안 해결에 제동이 걸렸다.
정권이 바뀌어도 관치 버릇은 여전하다. 한국 금융산업은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주범으로 꼽힌다. 그 이유를 이 행장 사퇴에서 또 한번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