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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익의 재팬톡!]무상 유아교육 선언한 日, 축복? 재앙?

일본에서 저출산 문제를 마주하다③

[전선익의 재팬톡!]무상 유아교육 선언한 日, 축복? 재앙?
서울베이비페어 찾은 방문객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2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세텍에서 열린 서울베이비페어에서 방문객들이 육아용품을 둘러보고 있다. 2017.11.2 ryousant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사진=연합 지면화상
【도쿄=전선익 특파원】“3만원에서 5만원하는 분유 한통은 2~3일이면 없어져요. 기저귀 값과 분유 값으로 한 달에 30만원 넘게 나가요.”(만2살 아이를 키우는 한국 전업주부)
“기저귀, 분유 값에 아이 보육원 비용으로만 한 달에 20만엔(한화 약 196만원)이 들어요. 비싼 인터(영어유치원)는 엄두도 못내요.”(만3살 아이를 키우는 일본 워킹맘)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은 가격을 매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현실입니다.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한 육아비용. 이것을 고민하는 것은 한국 부모든 일본 부모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전선익의 재팬톡!]무상 유아교육 선언한 日, 축복? 재앙?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1일 제4차 아베내각이 발족한뒤 도쿄 총리관저에서 기념촬영하는 아베 신조 총리(앞줄 가운데)와 각료들. /사진=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일 제4차 내각의 출범을 알리며 ‘사람 만들기 혁명’을 가속화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습니다. ‘사람 만들기 혁명’이란, 저출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아베 내각이 추진 중인 정책으로 유아교육 무상화가 핵심입니다.

아베 내각은 육아와 교육에 대한 불안 요소를 줄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개인 소비 확대를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입니다.

일본 내각부 관계자는 “일본 가정 70~80%가 아이를 늘리지 않는 이유로 ‘비용 문제’를 꼽았다”며 “육아 비용이 가계를 압박하고 있어 이를 해소해 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9일) 베일에 싸였던 무상 유아교육안이 발표됐습니다. 8000억엔(약 7조8643억원)을 들여 3~5세 보육원을 전면 무상화하는 방안으로 일본 정부는 약 200만명의 어린이가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아울러 0~2세 아동은 100억엔(약 983억원)을 들여 연수입 260만엔(약 2887만원) 미만의 세대에 한정해 보육 무상화를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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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게 웃는 아이들 [유성구 제공=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자라나는 아이들의 발전과 부모들의 경제적 부담 축소를 위해 정부가 무상으로 교육을 책임져 주겠다는 것은 현세대에게 축복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일본 사회에서는 아베 내각의 무상 유아교육 정책이 미래 세대에게 폭탄을 떠넘기는 재앙이라며 정책의 비용 효과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일본의 재정이 무상 유아교육을 견딜 만큼 건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부자가 아니어서 이렇게 돈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자리가 넘쳐나고 경기가 호황인 것처럼 보이는 일본 정부의 재정이 건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낯설어 보이기도 합니다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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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일본 정부의 채무액은 1071조엔(약 1경534조원)입니다. 지난 2000년 이후 매년 평균 30조엔(약 295조원) 규모의 재정 적자가 발생한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본은 소비세 인상안을 발표하게 됩니다. 현재 8%인 소비세를 2019년 10월부터 10%로 올려 약 5조6000억엔(약 55조원)의 세수를 확보할 계획입니다. 늘어난 세수 중 1조엔(약 9조원)을 사회보장비로 사용하고 4조엔(약 39조원) 이상을 재정 건전화를 위한 빚 감액에 사용할 방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베 내각의 ‘사람만들기 혁명’이 발표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재정건전화를 위해 사용해야 할 4조엔(약 39조원) 중 1조7000억엔(약 16조원)이 유아교육 무상화가 포함된 ‘사람만들기 혁명’ 비용으로 전환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아교육 무상화로 인해 일본 정부의 재정난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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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총리가 자민당 상의 없이 3000억엔을 산업경제계에 출자할 것을 요구하자 자민당 고이즈미 신지로(사진) 수석 부간사장이 아베 총리를 비판했다. 사진은 2016년 1월 20일 선거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fnDB
아베 내각은 또 2조엔(약 19조원) 규모의 패키지 정책을 만들기 위해 부족한 자금 3000억엔(약 2조9509억원)을 기업들이 책임지도록 했습니다. 당초 계획은 모자란 3000억엔을 세출 삭감과 어린이 사회보험 등을 통해 충당할 예정이었습니다.

아베 내각의 말바꾸기에 경제계는 물론 자민당마저도 적지않게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일본 정계의 아이돌이자 ‘포스트 아베’로 불리는 고이즈미 신지로 수석 부간사장은 아베 총리의 독단적인 모습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무상 교육안이 발표되자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소득제한 없이 모든 3~5세 아동의 유치원 보육 무상화를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무상화의 혜택은 고소득자에게 집중되게 됩니다. 저소득 가정과 편부모 가정의 경우, 이미 정부에서 보육원 및 유치원 비용의 일정 부분을 지원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녕 혜택이 필요 없는 고소득층 가정에게 비용의 대부분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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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일기자) 존슨즈 베이비 스킨케어 행사가 12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열려 수딩 내추럴 서포터즈 엄마들이 아기에게 로션을 발라주고 있다. /사진=fnDB
아베 정권의 ‘사람만들기 혁명’을 놓고 일본 내에서는 찬반여론이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관적인 의견으로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저소득 가정과 편부모 가정에게 더 큰 혜택을 줘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교육무상화가 아닌 보육원 수의 증가입니다. 8000억엔(약 7조8692억원)이란 큰 비용을 무상화라는 선심성 정책이 아닌 꼭 필요한 보육원 설립에 투자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볼 것이라는 지적에 일본 정부는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축복’일지, ‘내일의 재앙’일지 당장 답을 내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단 저출산 문제는 한 가지를 고쳐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아이를 키우기 힘든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의 무책임한 탁상공론 정책이 아닌 부모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 정책이 절실해 보입니다.

sijeon@fnnews.com 전선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