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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JSA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가 생각났다. 13일 북한 병사 한 명이 총상을 입은 채 귀순했을 때다. 영화는 냉전체제가 해체돼 가는 시대상을 잘 반영한 수작이었다. 최근 사인(死因)이 재조명되고 있는 가수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 등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도 판문점 일대의 을씨년스러운 정경과 함께 분단으로 인한 페이소스를 자아냈었다.

물론 2000년 개봉 당시에도 리얼리티 논란은 있었다. 판문점 남측 공동경비구역(Joint Security Area)은 이름 그대로 한국군과 미군으로 구성된 유엔사 경비대대가 공동으로 관할하는 지역이다. 군기가 무척 센 부대인 데다 영화 속 이영애 같은 미모의 중립국감독위 소속 여군이 있을 리도 없다.

특히 1976년 북한이 저지른 도끼 만행 이후 경비병들이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것도 금지됐다. 남북 병사 여럿이 모여 대화하는 설정 자체가 비현실적인 셈이다. "광석이는 왜 그렇게 빨리 죽었지?"라는, 북한군 중사로 분한 송강호의 대사가 생뚱맞게 들렸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영화에서처럼 40여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폐와 복부에 6~7발의 총상을 입은 북한군 병사가 남쪽으로 넘어왔다. 그가 왜 목숨을 걸고 귀순했는지를 새삼 곱씹어보게 된다. 북한 당국이 당성 등을 따져보고 출신 성분이 좋은 병사만 골라 판문점으로 보낸다는데 말이다. 실제로 일선 기자 시절 판문점 취재 현장에서 여러 번 만난 인민군들은 보통 북한 주민들에 비해 체격도, 영양 상태도 훨씬 좋아 보였다.

어쩌면 북한의 3대 세습 왕조에 붉은 저녁놀이 드리우고 있는 징후일지도 모르겠다. 지하 수백m 탄광 막장에서 산소가 부족하면 조롱 속 카나리아가 광부들에게 위기를 알린다고 한다.
북한 정권이 아무리 문을 닫아건 채 주민들의 사상을 통제하고 핵무기로 무장해 철옹성을 구축한들 한계는 있을 법하다. JSA를 통한 북한 병사의 귀순이 10년 만에 재연된 게 그 작은 징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이번 사건을 개혁.개방하지 않으면 북한 체제가 영구히 지탱할 순 없음을 경고하는 탄광 속 카나리아의 울음으로 인식했으면 불행 중 다행이겠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기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