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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 수입차 한국고객은 '호갱'?

[차장칼럼] 수입차 한국고객은 '호갱'?

2015년 미국에서 '라브 4' 차주가 도요타 고객센터에 편지 한 통을 보냈다. 윈드실드 와이퍼 결함과 주변에 발생한 녹을 지적한 내용이다. 도요타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꼼꼼한 자체 조사후 대대적 리콜을 전격 단행했다. 42만3500대의 대규모 물량이다. 소비자들은 과감한 결정과 신속한 대응에 신뢰의 시선을 보냈다. 수입차 브랜드들의 배짱영업 행태가 만연한 국내에선 생경함 반 부러움 반이다. 오히려 '호갱(호구+고객)' 소리 안 들으면 다행이다.

올 하반기에만 수입차업계에선 혼다 녹.부식 파문, 다카다 에어백 리콜 권고 불응, 6만대 배출가스 시험성적 조작 부정수입 등 복마전을 방불케 하는 굵직한 사건이 잇달아 터져나왔다. 업체들은 각각 "안전엔 문제없다" "본사의 글로벌 방침" "기재 오류" 등 안일한 답변 일색이다. 디젤게이트 이후에도 한국 소비자를 대하는 방식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특히 혼다는 한국 소비자를 호갱으로 만들었다. 문제가 된 어코드 2.4의 판매가격을 지난달 500만원이나 후려쳤다. 효과는 컸다. 10월에 전체 수입차 모델 중 단숨에 판매 2위로 올라섰다. 녹 논란이 불거진 모델을 가격으로 현혹시켜 급하게 물량을 떨어낸 모양새다. 어디서 본 듯한 광경이다. 2015년 11월 디젤게이트 여파가 만만치 않자 폭탄 할인으로 판매량을 전달 대비 377%나 끌어올린 폭스바겐의 데자뷔다. 혼다는 녹 발생에도 차량 안전엔 이상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를 입증할 만한 공개된 검증작업은 전무하다. 대다수 자동차 정비전문가들은 차량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 등을 아우르는 차체 패널의 내부에 녹이 발생하는 건 정상적 물류 과정에서 흔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야적장에서 장기간 비를 맞아도 차량 내부에 녹이 스는 건 극히 드물어서다. 하지만 혼다는 홈페이지에 사과문 달랑 한 장 올리고 방청작업 해줄 테니 그냥 타라는 식이다. 자국 일본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선 차량에 문제가 있어도 떨이로 팔면 된다는 오만함까지 느껴진다. 더구나 혼다가 문제를 고의로 숨기고 판매해왔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검찰이 철저한 수사로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하는 이유다.

수입차 시장에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된 것은 업체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문제가 있어도 싸면 산다는 소비자 의식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은 국제적인 호갱일 수밖에 없다. 해외에선 발빠른 배상과 리콜, 국내에선 노골적 차별과 무시가 이젠 놀랍지도 않다. 선뜻 이해가 어려운 변명과 시간 끌기로 한국 소비자 패싱에 익숙한 수입차업체들이 스스로 변하길 바라는 건 나무 밑에 누워 감이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과 같다.
정부의 제도적 장치 마련에 앞서 호갱을 자처하는 의식의 변화가 우선이다. 소비자 주권 강화는 스마트슈머(똑똑한 소비자)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호갱으로 남을지, 스마트슈머로 거듭날지는 우리 몫이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