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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20년, 이규성 전 재경부 장관 "당시 공무원들 자책감에 밤새워 일했다"

외환위기 20년, 이규성 전 재경부 장관 "당시 공무원들 자책감에 밤새워 일했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이 대담을 하고 있다.

"외국에서 돈이 안 들어오면 기름을 사올 수가 없으니 모든 빌딩의 난방이 그칠 것이다. 게다가 수도도 안 들어오고 전기도 쓸 수 없게 되는데 이 추운 날씨에 우리가 어떻게 견딜 것이냐…"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7년 11월 21일, 한국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1998년 재정경제부 장관직을 맡아 외환 위기 극복에 앞장섰던 이규성 전 장관은 20년 전 당시의 아찔한 상황을 이같이 회상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1일 서울 여의대로 전경련회관에서 '외환 위기 극복 20년 특별대담-위기 극복의 주역으로부터 듣는다' 행사를 개최했다. 이 전 장관과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현정택 대외정책연구원 원장은 이번 대담에서 당시의 외환 위기 극복 경험을 통해 20년이 지난 현재 경제를 조망했다.

외환 위기 당시를 "모든 국민이 참 고생하던 시기"라고 말한 이 전 장관은 위기 극복 과정에 금 모으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국민들의 노력과 더불어 공무원들의 헌신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재정경제부 공무원들은 환란을 일으켰다는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밤 새워 일하는 것은 기본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당시 재정경제부에서 국제금융심의관으로 있었던 권 원장은 "택시 기사에게 '재정경제부 갑시다'라고 하니까 '당신들이 외환 위기를 불러일으켰으니까 타지 마세요'라고 해서 아주 창피한 적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전 장관은 구제 금융 요청 과정에서 3가지의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첫 번째는 국제 금융기관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과정이다. 이 전 장관은 "국제 금융 시장은 채권자 주도 시장이지 채무자 주도 시장이 절대 아니다"라며 "장래에는 개선될 것이라는 점을 설명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했다. 또 너무 많은 뱃사공이 문제였다. 저마다 위기 해결책을 제안하다보니 정책결정자로서 무엇이 정말 탁월한 방안인지 가려내기 어려웠다는 것. 구제 금융 요청이 유일한 방안이었다는 점도 어려움이었다. 그는 "국민들이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지만 이 방법밖에 선택할 길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전 장관은 지금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또 다시 경제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서 성장 잠재력이 달라지며,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하기 위해서는 거시 경제를 잘 운영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전 장관은 이를 위해서 "이제는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서 보다 나은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며 "사회적 합의의 내실이 올바른 것에서 동떨어져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ktop@fnnews.com 권승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