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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노동이사제

노동이사제는 일찍이 유럽에 널리 퍼진 기업지배구조 모델이다. 독일은 1976년에 법으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근로자 500명이 넘는 기업은 감독이사회의 3분의 1, 2000명 이상 대기업은 2분의 1을 각각 근로자 대표가 맡도록 했다. 하지만 경영이사회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노동이사제는 도입 초기엔 독일에서 환영받았다. 과거 전통적 제조업 중심사회에서 노사 타협을 통해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측면에서도 노동이사제가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는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꾸준히 뒤따랐다. 과감한 인수합병(M&A)이 쉽지 않고 공장 폐쇄, 구조조정 등 체질개선을 쉽게 할 수 없다는 게 단점이다. 빠르고 유연한 성장이 필요한 기업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특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등 재정이 취약한 국가들은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독일 기업들은 유럽주식회사법에 근거를 둔 '유럽주식회사(SE)'를 탈출구로 삼았다. 유럽주식회사법에는 노동자를 이사회에 참여시켜야 한다는 강제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 기업들은 각국 법에 따라 언제든지 SE로 전환할 수 있어 노동자의 경영참가를 선택할지, 말지를 기업이 선택할 수 있다. 알리안츠, 바스프, 포르셰 등 주요 기업들이 이미 SE로 전환했다.

우리나라에선 20일 KB금융지주 임시주주총회가 열리면서 노동이사제가 수면으로 떠올랐다. KB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안건에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지면서다. 찬성률이 낮아 부결됐지만 앞으로 국민연금이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기업에서 비슷한 사례가 나타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럽식 노동이사제를 우리나라에 그대로 들여오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투적 노조가 득세하고 있는 일부 대기업은 자칫 기득권 노조의 목소리만 키워 기업의 유연성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KB금융지주 임시주총으로 노동이사제는 민영기업에도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가 퍼져 있다. 유럽식 노동이사제가 토양이 다른 한국에서 과연 뿌리를 내릴 수 있을까.

ksh@fnnews.com 김성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