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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아검사’ 필요성 논란

예비 엄마들 “낙태 허용 안돼 알아도 대책 없어”
산부인과학회 “사전 대비”

태아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기형아검사'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예비 엄마들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낙태가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기형아 판정을 받아도 별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검사 안 하면 분만 거절도

21일 산부인과 관계자 등에 따르면 기형아 선별검사는 선택사항이지만 일부 산부인과는 해당 검사를 의무인 것처럼 권유한다는 전언이다. 임신 25주차인 이모씨(30)는 "임신 초반부터 병원은 '몇 주차에는 기형아 검사를 받게 된다'며 필수적인 항목이라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2살배기 딸을 둔 한모씨(34)는 "의사와 간호사가 당연한 듯이 말해 최근까지도 의무인 줄 알았다"고 전했다.

기형아검사를 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있다. 임신 16주차인 손모씨(33)는 최근 정기적으로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손씨가 80만원 상당의 기형아검사를 받지 않겠다고 하자 해당 병원은 분만을 도와줄 수 없다고 했기 때문. 손씨는 "당시 간호사가 '왜 기형아검사를 하지 않느냐, 종교가 뭐냐, 확고한 신념이 있느냐'는 등 낙태를 암시하는 말을 해서 상처받았다"며 "기형아검사를 강권하지 않는 병원에서 분만할 예정"이라고 털어놨다.

의무라고 알았거나 강한 권유 때문에 수십만원을 들여 검사한 결과가 오진이어도 병원 측에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1997년 A씨는 기형아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다운증후군 아이를 출산했다. A씨는 병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당시 대법원은 "의사의 의료상 과실로 인해 기형아라는 사실을 밝혀 내지는 못했으나 밝혀냈다 해도 임신중절이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경우 (의료상 과실 때문에)출생 후 정신적 고통이 반드시 크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가 없다"고 판시했다. 낙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기형아 판정이 오진이든 아니든 산부인과에 책임을 지울 수는 없다는 취지다.

한 의료소송 전문 변호사는 "의사가 기형아검사 후 오진이라 해도 '낙태죄'가 있기 때문에 산부인과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실정"이라며 "기존 판례 때문에 피해 부모들은 소송도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일부 예비 엄마들은 기형아검사를 꼭 해야 하느냐는 불만을 터뜨린다. 100일 된 아들을 둔 박희정씨(30)는 "병원이 임신부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장사를 하는 것 같다"며 "뱃속 아이가 기형이라도 낳겠다는 엄마들이 많은데다 그렇지 않은 사람 역시 어차피 낙태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하나마나한 검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한산부인과학회는 "태아 질환을 발견할 경우 산모가 출산하는 날 소아과와 협력해 사전 준비를 해놓는다"며 "각 검사는 사전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지 '낙태'와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기형아 출산시 복지혜택 제대로 줘야"

현재까지 기형 판정을 받고 합법적으로 인공중절(낙태)수술이 이뤄진 사례는 없다는 게 대한산부인과의사회의 설명이다.
모자보건법에 따르면 태아가 아니라 부모가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에만 낙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기술 발전에 따라 호전 가능한 질환이 늘기 때문에 태아에게 장애가 있다고 해서 낙태의 길을 터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여성민우회 김민문정 상임대표는 "장애인이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실제 많은 경우 기형 고위험군 판정을 받고 고민 끝에 낙태를 선택한다"면서 "이런 선택을 피할 수 있는 조건을 국가가 만들어주지 않은채 여성들 선택을 '범죄'로 규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kua@fnnews.com 김유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