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

[곽인찬 칼럼] 튤립, 노예무역, 비트코인

가상화폐 널뛰기 불안하지만 시카고거래소선 곧 정식거래
대박·쪽박 누구 말이 맞을까

[곽인찬 칼럼] 튤립, 노예무역, 비트코인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화폐와 인연이 깊다. 그는 영국 왕립조폐국에서 30년을 일했다. 투기도 했다. 1720년 뉴턴은 남해(South Sea)회사 주식을 팔아서 7000파운드를 벌었다. 수익률 100%짜리 대박이었다. 재미를 붙인 뉴턴은 주식을 더 샀다. 하지만 주가가 굴러떨어지면서 2만파운드를 잃었다. 그리곤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천체 운동은 계산할 수 있어도 사람들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 뉴턴이 통탄한 이 사건을 흔히 '남해 버블'이라고 부른다.

남해 버블은 노예무역에 대한 환상에서 비롯됐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을 지배하던 스페인은 영국에 노예무역권을 줬다. 아프리카 흑인을 스페인 식민지에 공급하는 권리다. 이 권리를 남해가 독차지했다. 노예무역으로 떼돈을 벌 거란 소문에 주가는 다락같이 올랐다. 하지만 사업은 노다지가 아니었다. 주가는 순식간에 바닥을 쳤다.

이보다 100년쯤 전엔 네덜란드에서 튤립을 놓고 역대급 투기 바람이 불었다. 화가 얀 브리헐 2세는 튤립 광기를 그림으로 남겼다. 화면엔 원숭이들이 가득하다. 그중 한 원숭이는 똥값이 된 튤립에 오줌을 누고 있다. 법정에 끌려오는 원숭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원숭이도 있다. 저 멀리에선 원숭이 장례식이 한창이다. 브리헐 2세가 사람 대신 원숭이를 소재로 삼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왜 튤립 투기가 나왔을까. 학자들은 두 가지 이유를 든다. 먼저 희귀성이다. 튤립 중에서도 색이 섞인 줄무늬 모양을 최상급으로 쳤다. 알뿌리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튤립에서 이런 모양이 나왔다. 그런데 바이러스에 걸린 튤립은 쉽게 번식을 못했다. 당연히 품귀를 빚었고, 부르는 게 값이었다. 흰 바탕에 진홍색 줄무늬가 새겨진 튤립엔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곧 영원한 황제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 하나는 신종 금융기법이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국제금융센터 역할을 했다. 새로 등장한 선물.옵션 거래에 매혹된 투자자들은 앞뒤 안 재고 튤립 거래에 뛰어들었다.

올 들어 가상화폐 비트코인 열풍이 무섭다. 값은 1만달러를 훌쩍 넘어섰고, 수천달러 널뛰기는 예사다. 비트코인을 보면서 남해 버블이나 튤립 광풍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비트코인 채굴량은 갈수록 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마치 바이러스에 걸려 번식을 못한 튤립과 비슷하다. 금융위기를 파헤친 찰스 킨들버거 교수(전 MIT대)는 "맨 뒷사람이 개한테 물린다"고 경고한다('광기, 패닉, 붕괴-금융위기의 역사'). 재수 없이 물리기 전에 재주껏 도망치라는 얘기다.

반대로 "이번엔 다르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곧 비트코인 선물을 상장한다. 비트코인을 금.원유 같은 제도권 상품으로 취급한다는 뜻이다. CME는 세계에서 가장 큰 파생상품 거래소다. 그만큼 파장이 크다. 아니나 다를까, 뉴욕 나스닥도 비트코인 선물을 취급할 움직임을 보인다. 일본에선 변호사 이시즈미 간지가 쓴 '비트코인이 금화가 된다'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다. 이시즈미는 "비트코인이 투기 상품에 불과하다는 생각은 완전한 오판"이라고 단언한다. 국내 서점 가판대에는 비트코인 투자로 돈을 번 이들의 실전투자서가 즐비하다.

누구 말이 옳을까. 글쎄다.
두고 보는 수밖에. 나 같은 새가슴은 비트코인에 손댈 엄두가 안 난다. 누가 몇 달 만에 몇 억을 벌었다는 얘기는 꼭 아라비안나이트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이래서 내가 큰돈을 못 버는 모양이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