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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3위서 11위로 밀린 한국 혁신역량

4차 산업혁명에 대처 미흡.. 규제혁파로 돌파구 찾아야

정보기술(IT) 강국 한국이 3차 산업혁명을 주도했지만 다가오는 4차 산업혁명 경쟁에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도체.다중통신.컴퓨터그래픽 등 3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분야의 기술혁신 역량이 미국, 일본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반면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생화학, 제약 등 4차 산업혁명 유관 분야에서는 주요국에 밀려 11위로 평가됐다. 한국은행이 11일 내놓은 BOK경제연구에 실린 '4차 산업혁명과 한국의 혁신역량' 보고서의 내용이다.

보고서는 지난 40년간(1976~2015년) 미국 특허청이 승인한 500만건의 특허자료를 토대로 세계 15개 주요국의 혁신역량을 비교.분석했다. 이런 결과를 근거로 "향후 4차 산업혁명이 진전되면 한국은 혁신을 통한 경제발전 속도가 더뎌질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4차 산업혁명 관련 분야의 신산업이 규제의 사슬에 묶여 기술개발과 산업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은이 제기한 우려는 이미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은 기술은 있지만 규제 때문에 한국에서는 사업을 할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빅데이터, AI, 자율주행차, 드론, 원격의료 등에 얽혀 있는 규제가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곳곳에서 옭아매고 있다. 박근혜정부는 규제를 '암덩어리' '처부숴야 할 원수'라며 규제개혁에 나섰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문재인정부도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고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아직까지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반면 경쟁 상대국들은 하루가 다르게 앞서 나가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독일 등은 정부가 앞장서서 규제를 풀어 각종 신산업을 적극 키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기업 규제의 75%를 없애기로 했고, 일본은 특례법까지 만들며 신산업 규제완화에 나섰다. 중국이 드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정부 차원의 규제개혁 노력의 산물이다.


세계 주요국들은 지금 4차 산업혁명에서 속도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정쟁에 매몰돼 4차 산업혁명의 토대가 되는 규제프리존특별법을 3년째 묶어두고 있다. 이러다간 IT강국 한국이 4차 산업혁명에서 낙오자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한은이 오죽하면 혁신성장을 하겠다는 문재인정부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경고하는 보고서를 내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