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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워싱턴에서 보는 차이나리스크

[월드리포트]워싱턴에서 보는 차이나리스크


【 워싱턴=장도선 특파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한국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검토 등 한국을 겨냥한 미국의 통상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지만 한국 측도 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것 같다.

한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8일 "한·미 FTA 협상은 철저하게 양국이 윈윈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양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의 불합리한 무역 규제조치에 대해 국제규범에 어긋난 조치를 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해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 세탁기에 대한 미국의 세이프가드 발동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 앞서 지난주 워싱턴DC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서 열린 공청회에는 삼성과 LG 관계자 그리고 한국 정부 인사들이 참석해 세이프가드의 부당함을 적극 지적했다. 그날 공청회에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와 연방 하원의원, 테네시주 클락스빌 시장도 세이프가드가 삼성과 LG의 현지 공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한국측 입장에 힘을 보탰다. 미국 언론들도 세이프가드 발동은 소비자의 피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 우려를 나타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한국 세탁기 수입을 규제해달라고 미국 정부에 청원한 미국 가전업체 월풀은 경쟁을 회피하고 정부에 기대 회사 이익만 추구하려 한다며 비난했다. 그는 월풀의 시장점유율 하락은 한국 업체들의 덤핑판매가 원인이 아니며 좋은 제품을 사용하려는 미국 소비자 때문임을 트럼프 행정부는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미국의 통상압력에 기민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행위며 권리 행사다. 미국 내에 자신들의 경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한국측 입장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는 사실도 세계화 시대, 정상적 국가 관계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국 정부가 한국 기업들에 대한 최종 규제 여부를 결정하기 앞서 당사자들에게 입장을 밝힐 기회를 제공하는 것 역시 국제 관계에서 마땅한 절차며 상대방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지금 한·중 관계에선 이와 같은 상식은 찾아볼 수 없다는 느낌이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국 배치를 둘러싼 갈등으로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중국인들의 한국 관광은 여전히 제한되고 있다. 한국 드라마, 음악 등 대중문화의 중국 진출도 타격을 받았다. 지난해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최악의 고비는 넘겼다고 하지만 정상화 단계에 도달한 것 같지는 않다. 안타까운 것은 중국 정부의 부당한 압력과 각종 제재에 그동안 한국 측에서 이렇다 할 대응이 없었다는 점이다. 중국 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WTO 제소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보도도 접한 기억이 난다. 한국 정부가 무능하고 기업들이 약점이 많아서 억울한 피해를 당하면서도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따지고 항의한다고 통할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차이나 리스크에 대한 이해와 대비가 부족했던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지불한 값비싼 수업료였다고 정리해야 할 것 같다.

한·중 간 사드 갈등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기대감이 고개를 들던 지난해 가을 영국의 경제전문 주간지 '더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이른바 '개집 접근법'을 소개했다. 물론 개집 접근법은 중국의 교훈적 외교전략이 아니며 논어나 손자병법에 나오는 내용도 아니라는 전제를 달았다. "중국은 만일 당신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이 변할 때까지 괴롭힐 것이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다면 개집에 집어넣을 것이다. 당신이 계속 변하기를 거부하면 중국은 적당한 기간 벌을 준 다음 다시 당신을 개집에서 꺼내주고 모든 것이 정상인 척 행세하며 당신이 (중국에) 고마워할 것을 기대할 것이다.
"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개집 접근방식으로 가장 최근 고통을 겪은 나라를 한국으로 지목했다. 차이나 리스크는 실존하는 변수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개집에 또다시 들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jdsmh@fnnews.com 장도선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