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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익의 재팬톡!] 파견직 위한 日 '파견법' 도리어 대량해고 낳을 판

-일본 일하는 방식을 개혁한다.③
-‘파견사원’ 구하려던 법이 ‘파견해고’ 일으킨다
-日 ‘1년 계약직’ 파견직원 구하기 위한 ‘파견법’ 2015년 시행
-일률적 3년 계약, 5년 후 정직원 고용 등 파견직원 위한 법
-기업들 부담 최고조...사칙 개정으로 돌파구 마련
-기업 "정직원에 비해 채용이 쉬운 비정규직, 똑같이 대우 할 수 없다"
-日변호사 “파견법이 오히려 기업들의 ‘파견해고’를 쉽게 만들고 있다”

[전선익의 재팬톡!] 파견직 위한 日 '파견법' 도리어 대량해고 낳을 판
/사진=연합뉴스
【도쿄=전선익 특파원】“올해는 많은 파견 사원이 해고의 기로에 서게 될지도 모릅니다.”
파견법 전문 토미타 신페이 변호사(오사카 변호사회)가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그는 일본이 파견사원을 보호하기 위해 개정한 ‘노동자파견법’이 3년째로 접어드는 올해 전국에서 ‘파견 해고’가 대량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일본은 오랜 기간 파견 사원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습니다. 2008년 리먼쇼크 이후 정규직이 급격히 줄고 비정규직이 크게 늘어나자 문제는 더 심각해 졌습니다. 서류 작업, 비서, 번역 등 26가지 업무에 종사하는 파견 사원들은 채용기간 제한이 없어 1년 단위 계약을 이어가는 실정이었습니다. 1년 계약을 하다보니 회사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는 경우가 많았고 종신고용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정규직과 파견직의 벽은 점차 높아져 갔고 갑자기 해고를 당해도 파견직은 하소연할 곳도 없었습니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지난 2015년 9월 노동자파견법이 개정되기 전에 약 134만명의 파견 사원 중 40%가량이 이들 26종의 업무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전선익의 재팬톡!] 파견직 위한 日 '파견법' 도리어 대량해고 낳을 판
/사진=fnDB
일본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지난 2015년 노동자파견법을 개정했습니다. 파견 근로자의 직접 고용을 촉진할 목적으로 파견기간을 일률적으로 3년으로 제한한 것입니다.

일본은 앞서 지난 2013년 노동계약법을 개정해 비정규직이 같은 회사에서 통상 5년 이상 근무할 경우, 본인이 희망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노동자파견법 개정까지 이뤄져 파견 사원이 회사와 재계약을 한다면 5년 이상 근무한 것이 돼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정규직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길을 열어줬다”며 “파견의 책임을 강화하고 파견 근로의 고정화를 방지하게 됐다”고 자평했습니다.

그런데 파견 근로자를 위한 ‘노동자파견법’에 허점이 있었습니다. 3년 후 재계약을 하지 못하면 말짱 꽝이라는 것입니다. 정규직을 늘리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부 기업들은 3년 고용이 지나면 재계약을 하지 않고 새로운 파견 사원을 고용하는 사내 규정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선익의 재팬톡!] 파견직 위한 日 '파견법' 도리어 대량해고 낳을 판
/사진=연합뉴스
아울러 노동자계약법에도 빈틈이 있었습니다. 비정규직직원이 계약 종료 후 재고용까지 공백기간이 6개월 이상인 경우 기간이 다시 재설정된다는 조항이 있는 것입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부 대기업들은 이 조항을 이용해 비정규직 직원이 같은 회사에서 재계약을 원할 경우 6개월의 공백기간을 거치도록 하는 사칙을 넣고 있습니다.

토요타자동차는 재계약시 1개월의 공백기간을 두던 기존의 사칙을 지난 2015년 6개월로 바꿨고 혼다, 닛산, 다이하츠 등도 2013년 공백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로 변경했습니다.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토요타나 혼다 등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직원이 3년 계약기간을 마치고 1개월을 쉬고 재계약을 맺으면 5년 후 정직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변경된 사칙으로 인해 3년 계약 후 무조건 6개월을 쉬도록 하면서 정직원이 될 가능성이 ‘0’에 가깝게 된 것입니다.

[전선익의 재팬톡!] 파견직 위한 日 '파견법' 도리어 대량해고 낳을 판
[도카이<일 아이치현>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2016년 12월 일본 아이치현 도카이시에서 카시트 마무리다림질하는 중소기업 종업원. /사진=연합뉴스
기업들의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정식 절차를 통해 뽑은 정규직원들과 비교적 채용이 쉬운 비정규직 또는 파견사원이 똑같을 수 없다는 의견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유사한 한국 시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 11일 인사담당자 354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 직원에 대한 신뢰도를 ‘정규직보다 낮다(54.5%)’고 평가했습니다. 정규직보다 신뢰도가 높다고 답한 이들은 0.56%에 불과했습니다. 단순 업무를 위해 뽑는 직원들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또 인사담당자의 과반 이상이 ‘비정규직의 채용 경쟁률이 정규직보다 낮다(63.3%)’고 답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이 기업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일본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의 한 중소기업 사장은 “비정규직 직원의 경우, 야근이나 잔업을 전혀 하려 하지 않는다”며 “애사심이 정직원들에 비해 낮다고 여겨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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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 지면화상
이러한 복잡한 계산들이 엮여 ‘노동자파견법’이 개정된지 3년째 되는 올해 9월 일본에서는 대량의 ‘파견 해고’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토미타 신페이 변호사는 “법 개정으로 오히려 기업이 ‘파견해고’를 하기 쉬워진 측면이 있다”며 “올해는 많은 파견 사원들이 해고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습니다.

한국도 기업내 비정규직 및 파견 사원 비율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커리어에 따르면 기업내 비정규직 비율은 10명 중 1~2명이라고 합니다. 최저임금 상승을 앞두고 있는 2018년 기업들은 살림을 꾸리기 더 어려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살림이 어려워지면 일하는 사람을 줄이는 방법을 주로 선택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비정규직 파견사원들이 제일 먼저 피해를 보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청년 실업 문제와 함께 가장 눈여겨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sijeon@fnnews.com 전선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