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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불통의 벽에 갇힌 최저임금 정책

정부·소상공인 따로 놀아.. 더 겸손하게 귀 기울이길

최저임금 정책이 불통의 벽에 갇혔다. 대통령.정부와 700만명 소상공인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청와대에 중소기업인과 소상공인을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안착을 올해 초반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이 "결국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관들은 물론 청와대 수석까지 나섰다. 정부가 마련한 3조원짜리 일자리안정기금 등 보완책을 홍보하는 게 목적이다.

그러나 현장에선 전혀 다른 소리가 들린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이대론 전국 700만 소상공인 다 죽는다"고 말했다. 17일 중앙일보에 실린 인터뷰에서다. "능력 안 되는 놈은 문 닫고 죽으라는 퇴출작전 아닌가" "현 정부가 겸손함이 없다. 자기만 옳다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다소 격한 표현은 있지만 소상공인의 심정을 그대로 담았다. 지난해 최저임금을 대폭 올린다는 말이 나올 때부터 소상공인들은 "촛불을 들어 정권 교체에 기여한 소상공인들이 그 촛불에 타죽게 생겼다"고 반발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 정부는 공약에 집착했고, 올해 16.4% 인상을 밀어붙였다. 2020년까지 시급 1만원 공약도 아직 살아 있다.

이런 가운데 독일계 컨설팅 회사가 17일 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냈다. 롤랜드버거(Roland Berger)는 문재인정부의 최저임금, 근로시간, 비정규직 정책으로 인한 추가 인건비와 매출감소 예상액이 총 465조원에 이를 것으로 봤다. 올해 정부 예산(429조원)보다 많다. 그러면서 최저임금은 연령.산업.지역별로 달리 적용하고, 보너스와 숙식수당을 최저임금 안에 넣으라고 권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더 천천히 하고, 영세 사업장엔 주당 8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라고 말했다.

지금이야말로 소통이 필요한 때다. 대선 공약에 집착할 일이 아니다. 박근혜정부는 불통정부라는 오명을 안았다. 박 대통령은 유체이탈 화법을 쓴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문재인정부를 두고 다시 불통이니 유체이탈 화법이니 하는 비판이 나오는 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700만 소상공인은 다 서민들이다. 이들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험물로 삼아선 안 된다.
공약은 종종 현실과 충돌한다. 이럴 땐 현실이 먼저다. 정부만 옳다고 고집을 부릴 게 아니라 좀 더 겸손하게 귀를 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