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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도 넘은 美 통상공세 … WTO 제소가 해법

세탁기·태양광 세이프가드.. 자유무역 훼손 정면대응을

미국이 한국에 통상공세의 칼을 뽑아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전지.모듈에 고율의 관세를 물리는 내용의 국제무역위원회(ITC) 세이프가드 발동 권고안을 승인했다. 최악의 결과가 현실화했다. 당초 ITC가 권고한 복수안 가운데 한국에 불리한 안이 채택됐다. 현재 무관세로 수출되는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는 앞으로 저율할당관세(TRQ) 방식이 적용돼 첫해에 연간 120만대까지 20%, 초과분은 50%의 관세를 물게 된다. 태양광은 2.5GW 초과 제품에 첫해 30%의 세율이 적용된다. 국내 관련기업들이 대미 수출에 막대한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한국은 '자국 우선주의'를 외쳐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한 올해 첫 무역보복 조치의 목표물이 됐다. 앞으로 자동차와 철강 등 전방위 파상공세가 이어질 것임을 예고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이 본격화하는 시점에 기선제압을 하겠다는 의도도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무리수다. WTO 협정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다. 세이프가드는 국내 산업기반이 무너질 정도로 심각한 피해가 입증될 때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긴급구제 성격의 조치다. 반덤핑에 비해 발동요건이 훨씬 까다롭다. 미국태양광산업협회(SEIA)는 이번 조치에 대해 홈페이지를 통해 "태양광 부문에서 올해에만 2만3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수십억달러의 투자가 취소.연기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오죽하면 미국 내에서조차 비판이 나오겠는가.

다만 현실적으로 미국은 우리가 안보를 의존하고 있는 강대국이다. 북핵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양국 간 긴밀한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미국이 무역보복을 해온다고 해서 우리가 맞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자 무대인 WTO에서 싸우는 것이 유리하다. 한국은 2016년 미국을 상대로 세탁기 분쟁에서 이미 한 차례 이긴 경험이 있다. 하지만 미국은 판정 결과를 이행치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응징이 필요하다.

최근 열린 '2018 전미경제학회'에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미국 컬럼비아대)는 "200년 된 무역이론을 무시하고 세계 무역질서와 미국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미리부터 겁 먹을 이유는 없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부당한 조치에 대해 WTO에 제소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밝혔다.
그는 WTO 분쟁해결기구 재판장을 지낸 사람이다. 미국의 세이프가드 남발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처음부터 강력하게 정면 대응을 해주기 바란다.